[준형] 유튜브 비평, 좋좋소, 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



내게 근래 가장 재미있게 본 드라마가 뭐냐고 묻는다면,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넘쳐나는 레슬링 드라마 <글로우>(Gorgeous Ladies of Wrestling!)도 아니고, 두 번째 정주행을 마친 <브레이킹 배드>(I Am The One Who Knocks!)도 아닌 <좋좋소>라고 답하겠다. 여행유튜버 ‘빠니보틀'이 기획과 감독을 맡았고, 유튜브 <이과장> 채널과 <왓챠> 플랫폼에 업로드된 이 웹드라마는 3번의 시즌과 총 26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다. 에피소드 당 100만에서 200만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고, 대한민국 중소기업의 실상을 ‘하이퍼 리얼리즘'적으로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으며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개인적으로는 전문 배우가 아닌 출연자들(이과장, 정민우 등)의 열연도 놀라웠고, 치밀한 구성과 담담하면서도 현실적인 인물 묘사도 좋았지만, <좋좋소>에 대한 얘기를 꺼내고 싶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지점은 역시 일터에 대한 재현이었다.


<좋좋소> 이전의 일터 재현은 어떠했는가. 일터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한국 드라마와 영화들 속에서 우리는 보통 잘 가꾸어진 일터들을 만나왔다. <미생>의 ‘원 인터내셔널'이 그랬고,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율제병원이 그랬다. 꼭 대기업이나 병원이 아니더라도 이야기 속 일터들은 나쁘지 않았다. 월급이 밀리지도, 주먹구구식으로 신입 사원을 채용하지도 않았다. 물론 악행을 일삼는 ‘빌런’들이 일터에서의 삶을 험악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일터 자체가 흔들리는 일은 잘 일어나지 않았다. 드라마와 영화 속 일터는 단단하게 버티고 서서 이야기가 흘러가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그런 단단한 일터 안에서 인물들은 차츰 커 나갔다. 일터는 그들에게 자부심도, 가르침도 주는 곳으로 그려진다. 그리고 그들에게 ‘무엇으로 살 것인가'를 은연 중에 속삭이는 곳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미생> 속 원 인터내셔널은 ‘상사맨’이라는 이상적 정체성을 꾸준히 제시할 수 있는 곳이다. 상사맨은 위험요소와 변수가 난무하는 무역 업무 속에서 패기와 기지, 그리고 전문성을 발휘해 무엇인가 얻어내고야 마는 누군가이다. 장그래도, 오상식도, 안영이도, 나름대로의 조건 속에서 ‘상사맨’이라는 정체성을 쥐었다 놓쳤다 하며 일터 안에서의 삶을 꾸려나갔다.


그러나 <좋좋소>의 일터는 다르다. 이야기가 펼쳐지는 주 무대인 ‘정승 네트워크’는 ‘도망’ 쳐야 할 곳, 혹은 잠깐 들렀다 지나가는 곳 이상이 되지 못한다. 조충범이, 이길이, 이미나가, 이예영이 정승 네트워크에서 얻어내야만 하는 것은 자칫 때에 맞추어 받지 못할지도 모르는 월급뿐만 아니라 어떤 의미를 제공해주지 못하는 일터와 노동 조건 속에서의 자기 정체화다. 그들은 소소한 업무 속에서 나름대로 보람을 찾으려고 노력하거나(조충범), 반대로 직장 안에서의 나와 사적 나를 분리시키면서 무표정으로 일관(이미나)하는 전략을 펴면서 이러한 조건에 맞선다. 이 가운데 비교적 일과 스스로를 일체화시키려는 시도를 했던 인물(이길)은, 그런 일체화 시도들이 무너지는 사건들을 경험한 뒤, 결국 일터를 떠날 수 밖에 없었다.


<좋좋소>의 가치는 여기에 있다. (아직 시즌 3가 끝났을 뿐이지만) <좋좋소>는 ‘오늘날 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라며 묻고 그 답을 열어놓는다. <미생> 속 장그래는, 원 인터내셔널을 떠날 수 밖에 없었지만 직장 상사 오상식을 새 회사에서 다시 만나며 다시 ‘상사맨'의 의미 자장 속으로 복귀한다. 반면 <좋좋소>의 인물들은 일터에서 그런 의미들을 찾는 것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음을 체득한 듯 보인다. 그럼에도 어찌되었건 그들은 뚜벅뚜벅 살아간다. 때문에 <좋좋소>에는 견고한 의미 속에 스스로를 뉘인 인물들을 보며 느끼게 되는 찡함이나 벅차오름이 없다. 대신 드라마는 우리가 실은 세계 속에서 부유하고 있으며,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으나, 어찌되었건 살아나가고 있음을 덤덤하게 보여준다. 그런 가운데 우리는 다시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오늘날 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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