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형] 몰래카메라 코미디의 문화정치학

1월 11 업데이트됨



유튜브 비평을 시작합니다


   TV는 갔고, 누가 뭐래도 유튜브의 시대다. 유튜브는 국내 스마트폰 이용자가 가장 많이 이용하는 앱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매체 이용률에서도 TV를 앞서게 된지 오래다. 이렇게 대단한 플랫폼이 된 유튜브에 변변한 비평의 창구가 없다는 것은 놀랍다. 보도 기능을 하는 TV 방송사들은 반드시 자체적으로 옴부즈맨 프로그램을 제작, 방영해야하며 민주언론시민연합과 같은 시민 단체나 미디어오늘과 같은 매체들은 언론 매체의 보도와 콘텐츠 전반에 대해 감시하는 기능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TV 비평을 하듯 비평하자고 말하기엔 유튜브에는 너무 다양한 콘텐츠들이 있다. 각각의 피드엔 각자의 취향이 가득 찬다. 사람들이 요새 무얼 본다고 얘기하기조차 조심스럽다. 내 피드를 채우는 것들이 당신의 피드엔 흔적 조차 없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인기를 끄는 것들이 있기 마련이다. 금새 뜨거워졌다 식어버릴지라도, 유튜브에는 사람들이 몰리는 것들이 있다. 적어도 이러한 경향들에 대해서는 비평적인 시각을 들이댈 필요가 있다. 


   [신문연 칼럼]의 한 귀퉁이를 떼다가 유튜브 비평을 시작하려고 한다. 필자가 칼럼을 내야할 차례가 될 때마다 하나씩 풀어내려고 한다. 혹 독자의 피드에도 비평할만한 콘텐츠가 있다면 언제든 알려주시길 부탁드린다.

   유튜브 비평의 첫번째 주제는 몰래카메라다. 유튜브 콘텐츠 중 개그/코미디 부문을 떼어 낼 수 있다면, 몰래카메라는 그 부문에서 가장 일반적인 포맷 중 하나일 것이다. 특히 전, 현직 개그맨들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인 <동네놈들>, <배꼽빌라>, <욜로코믹스>, <깨방정> 등이 몰래카메라 포맷을 주력 콘텐츠로 삼고 있다. 이외에도 몰래카메라 포맷을 활용하는 채널은 무수히 많다.

   영상의 내용은 단순하다. 유튜버들이 카메라를 숨겨놓고 그들의 지인(동료 개그맨이나 가족 등)이나 일반인을 대상으로 우습거나 이상한 언행을 한다. 몰래카메라의 희생자(?)들은 이 상황을 모르는 상태에서 화를 내거나 웃음을 참느라 어쩔 줄 모르게 된다. 물론 영상 말미에는 사후에 희생자들의 영상 사용 동의를 구하였음을 고지하는 문구가 빠지지 않는다. 


   몰래카메라의 재미는 거기에서 온다. 시청자와 유튜버는 알지만 희생자는 모르는 상황에 대한 정보와 그 비대칭적  정보에 의해 당황하거나 웃음을 참아야하는 등 곤란한 지경에 놓이는 희생자들의 모습. 손쉽게 떠올릴 수 있는 것은 로라 멀비(Laura Mulvey)의 논의다. 그는 일찍이 영화적 상황에서 대상화되는 여성 이미지와 관객의 남성적 시선에 대한 논의를 펼친 바 있다. 몰래카메라에서도 유사한 구도가 만들어진다. 시청자는 상황에 대한 정보를 희생자보다 더 많이 가지는, 우월한 위치를 점유한다는 점에서 멀비의 관객과 같다. 이러한 위치에서 시청자는 희생자가 곤란해하는 모습들을 편안하게 관찰하고 대상화하며 쾌감을 느낀다. 멀비는 이를 남성의 무의식에 내재된 거세공포와 그것에서 벗어나기 위한 관음주의적이고 물신주의적 전략이라고 말했지만, 꼭 정신분석학적 논의를 따를 필요는 없다. 우월한 위치가 주는 쾌감 정도로 몰래카메라의 재미를 이해해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포맷이 왜 오늘날 유튜브 시청자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가 하는 질문에 답하는 일이다.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는 개그맨 최국은 몰래카메라 포맷의 인기에 대해서 분석한다. 그에 따르면 몰래카메라 개그는 ‘짜기 쉽기 때문에’ 인기다. 간단한 설정과 준비를 통해서 한 편의 콘텐츠를 만들 수 있고, 시청자들도 그것을 재미있게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에게도 시청자들이 재미를 느끼는 이유는 미지의 영역인 듯 하다. 몰래카메라는 왜 재미있는걸까?


   앞서 이야기한 우월한 위치란 무엇을 의미하는지 짚고 넘어가자. 능동적 수용자(Active audience)에 대한 논의는 이미 50년대 말부터 미디어 학계에 유통되어 왔다. 오늘날까지도 여러 형태로 변주되어 온 이 논의에 따르면, 수용자는 미디어의 메시지와 즐거움을 수동적으로 얻는 존재들이 아니라 미디어를 적극적이고 전략적으로 이용함으로써 자신의 목적을 충족하는 존재이다. 반론의 여지가 많겠지만, 수용자에게 점차 커다란 능동성과 콘텐츠 내의 권능이 주어져 왔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제 수용자들은 오디션 프로그램의 투표 시스템을 통해 새로운 스타를 탄생시키기도 하고, 채팅을 통해 프로그램 내용에 직접 참여하기도 한다. 이런 일들은 점차 일상적인 것이  되어가고 있다. 유튜브는 이러한 수용자의 능동성이 강하게 발휘되는 공간이다. 그들은 영상에 댓글을 달고 라이브 채팅에 참여하며 콘텐츠를 완성해 나간다. 


   몰래카메라에는 여기에 더해지는 요소가 있다. 몰래카메라는 시청자와 몰래카메라 주동자를 한편으로 만들고 몰래카메라의 희생자를 그 공모 작업의 대상으로 만든다. 시청자는 이미 상황 정보를 충분히 가진 상태로 몰래카메라 희생자의 반응을 숨죽여 살핀다. 희생자가 당황하거나 곤란해하는 순간이 바로, 몰래카메라가 성공하는 때이다. 이 과정에서 수용자는 프로그램에 투표로 참여하거나 댓글을 다는 등의 단순한 능동성을 넘어, 몰래카메라의 성공을 공모하는 적극적인 능동성을 발휘하게 된다. 유튜버와 함께, 시청자는 마치 같은 사냥감(game)을 쫓는 사냥꾼(gamer)의 형상을 하게 되는 셈이다. 그리고 희생자는 상황 정보를 모르는 ‘바보같은’ 모습으로 웃음을 유발하는, 철저히 대상화된 존재가 된다.


   누군가가 ‘바보같은’ 모습으로 웃음거리가 된다는 사실은 문제적이다. 웃음거리가 되었다가도 결국 유튜브 영상 업로드를 허락하는 몰래카메라 희생자들의 존재 자체가 문제적이다. 상황에 대한 인지 혹은 정보가 모자란 누군가가 웃음거리가 되는 특수한 몰래카메라적 상황의 일반화는, 실제로 비대칭적 정보 상황에서 웃음거리가 될 누군가가 존재를 자연스럽게 만들 수 있다. 실제로 몰래카메라 희생자 중 다수는 '아름다운 여성'이라는 특성을 가진다. 쉽게 감정을 드러낼 것 같지 않은 그들이, 몰래카메라 상황에서 일그러지는 웃음을 참아가며 '무너지는' 모습이 곧 몰래카메라 코미디의 카타르시스적 순간이라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 같은 지점에서 느껴지는 쾌감은 언제나 감정을 다스리고 '도도할 것 같은' 여성 주체가 자기 통제를 놓치는 순간을 대상화하면서 유희거리로 만드는 놀이의 쾌감이다. 대상화되는 누군가를 사냥감 삼아 게임을 즐겼던 우리가, 사회적 삶 속에서 그와 같은 놀이 상황에서 누군가를 바보로 만들지 않을 수 있을까? 여성 뿐만 아니라 노인, 외국인, 청소년과 어린이 등. 비대칭적 정보 상황에서 불리한 위치에 서기 쉬운 존재들이 언젠가 웃음거리가 될 때, 우리는 일상 속 몰래카메라의 공모자가 되지 않을 수 있을까?


우리는 우리의 피드 속 놀이와 즐거움 이면의 폭력성을 더 섬세하게 감지해야만 한다. 더 진일보한 논평과 토론이 이어지길 바라본다.


조회 331회댓글 1개

사단법인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2019 by 김선기. Proudly created with Wix.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