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형] 누가 문화연구자가 되는가


누가 문화연구자가 되는가? 이 글은 ‘나’라는 사람의 문화연구자 되기/되어오기에 관한 자기기술에 가깝다. 나는 2014년 석사과정에 입학하면서부터 이미 5년 이상을 ‘문화연구자’로 정체화해온 박사과정 학생이지만, 여전히 ‘문화연구자’라는 타이틀은 온전히 나를 다 장악했거나 설명해주는 말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문화연구자로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문화연구자가 되어온 개인이고, 또 여전히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누가 문화연구자가 되는가? 문화연구자가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2014년에 나온 김선기, 이상길의 논문 “어떻게 문화연구자가 되는가”(내 글의 제목은 이 논문 제목을 오마주한 것이다)는 언론학과 문화학, 여타 협동과정 등에서 문화연구자로 자신을 정체화하고 있는 석사과정생들의 인터뷰를 통해 청년 문화연구자들의 정체성 구성/투쟁 과정을 다룬다. 이 논문에 따르면 석사과정 문화연구자들은 성장하고 교육받는 과정에서 ‘문화/예술’과 친연성을 가지게 된 경우가 많았고, 학부 시절 우연히 ‘문화연구’라는 주제를 알게 되어 대학원에 진학했다. 대학원 생활 도중에는 노동자/대학원생 정체성을 동시에 가지게 되며, 학문 분과의 소수성을 자유로움, 개방성 등으로 전유하기도 한다.


나의 경우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유년기부터 음악가가 되겠다는 꿈을 꾸어왔고, 신문방송학을 전공했던 학부 시절 내내 학업보다는 음악 동아리 생활에 매진했었다. 동시에 이명박, 박근혜 정권을 지나면서 소위 ‘깨시민’으로 자기 정체성을 가지기도 했었다. 공부에 크게 열심히인 것은 아니었지만 ‘사회’와 ‘인간’에 대한 이론적 설명을 하는 학문들에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경제학을 복수 전공한 것도, 그것이 명쾌하게 인간과 사회의 행동/작동 방식을 알려주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일부러 철학과 수업을 수강했던 이유도 비슷했다. 그 외에는 대단히 일반적인 한국 남성으로 길러졌다. 소수자에 대한 시각은 시혜적인 측면이 강했고(이것은 공익근무 기간동안 장애학교에서 보조교사로 일한 경험이 크게 작용한 듯 하다), 젠더 감수성은 낮았으며, 일종의 엘리트주의 같은 것도 가지고 있었다.


그 와중에 신문방송학과의 문화연구 관련 수업들을 들으며 문화연구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대학원 진학도 그때부터 생각하게 됐다. 그러나 문화연구 외에도 실용음악, 철학 등 여타 분과의 대학원으로 진학할 마음도 갖고 있었기에, 이 당시까지만해도 그다지 분명하게 문화연구자로 스스로를 정체화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문화연구는 여러 선택지 중 하나일 뿐이었다. 그러나 내가 다니던 학과에 문화연구 전공 교수들이 있었고, ‘대중’ 문화에 대한 나의 애정을 드러내 보일 수 있는 곳처럼 보였기에 최종 선택지가 됐다. 그렇게 문화연구를 ‘전공’하는 학생이 되었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면 처음에는 ‘문화연구’ 보다는 ‘언론학’ 전공자로서의 정체성이 더 강했다. 내가 속한 신문방송학과의 체제 안에서 문화연구자는, 체계적으로 길러지기 보다는, 언론학자로 길러지면서 동시에 '알아서 문화연구자'가 되어야만 했다. 대학원 동료들이 보기에 나는 문화연구자였지만, 석사과정 내내 내 스스로는 언론학자였다.


'문화연구자'로서의 정체화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부끄럽게도) 박사과정에 진입하고 나서, 또 다른 학교와 공간들에서 공부하던 동료 문화연구자들을 만나고부터였다. 혼자 분투했었던 문화연구자 되기의 과정이, 같은 정체성을 공유하는 동료들을 만나고부터 불이 붙었다고나 할까. 동료들로부터 많은 자극을 받으면서 뒤늦게 나를 본격적인 문화연구자로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들의 말과 글에 더 귀를 기울이고 함께 공부하면서, 좀 더 성찰적으로 공부하고 이야기하려는 노력을 하게됐다. 그리고 그 노력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이 칼럼을 실어주는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은, 개인적으로는 그 정체화 과정 중에 있는 시도다. 나는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을 통해 더 충실한 문화연구자가 되어가고 있다고 믿는다. 아직 충분하지는 않지만, 스스로 점점 더 나아지고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이미 ‘된 채로’ 문화연구를 한다고 말하기 보다는 여전히 ‘되어가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편이 더 솔직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이미 문화연구자인 사람만 문화연구자가 된다면, 누가 문화연구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겠는가. 우리는 그렇지 않았던 사람들이 문화연구적 발화에 동의해주길 바라며 공부하고 작업한다. 나의 ‘문화연구자 되기’의 현재진행형 경험은, 내게는 일종의 준거점이기도 하다. 내가 되어가는 것처럼, 누구나 새로운 사유에 동의하고 행동할 수 있다고 믿는다. 누가 문화연구자가 되는가? 바꾸어, 누가 문화연구자가 ‘되어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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