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수] 문학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2021 제12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 수록된 전하영의 「그녀는 조명등 아래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를 읽고 나는 책상에 앉아 많은 시간을 보냈다. 이 단편 소설은 예술의 위상이 견고했던 시기를 여성주의 관점으로 재해석한다. 오은교 평론가가 지적하듯이 “나를 키운 것이 나를 모욕하는 것이었음을 깨달았을 때”(63)가 온 것이다. 나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학부 시절 교양 과목인 ‘소설 창작’ 수업을 신청했다. 처음으로 듣는 창작 강의여서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 교수는 첫 수업부터 10분 늦게 강의실에 도착했다. PPT도 강의계획서도 필기도 없었다. 출석 체크는 종강 전까지 하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강의 대신 세 시간 내리 교수는 이야기하듯 떠들기만 했다. 내가 알던 교수의 모습이 아니었다. 꼼꼼한 강의와 빡빡한 과제, 객관식&서술형 시험에 지친 나는 속으로 이렇게 외쳤다.

아! 이게 예술이구나.

당시 ‘예술인’ 교수를 바라보는 나의 가치관은 이런 식이었다. “그런대로 말이 통하는 상대”(9쪽)이며 교수임에도 “묘하게 평등한 분위기로 잡담”(10쪽)을 나눌 수 있고 왠지 모르게 “아무 뜻도 없는 말이지만 어쨌거나 너무 사적인 감정”(11쪽)을 대뜸 발설하고 싶은 대상. 한마디로 동경이었다. 교수는 나와 같은 이들을 주축으로 중간고사 기간이 끝나고 뒤풀이 겸 술자리 모임을 결성했다. 그곳에는 문학을 사랑하고 예술을 사랑하는 이들로 가득했다. 울고 토하고 먹고 마시고 하면서 다들 횡설수설 인생에 대해 떠들었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무언가를 여기서 배우고 있다고 믿었다.

예술에 대한 굳건한 동경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의심의 균열이 깨진 건 화장실 때문이었다.

뒤풀이 때 매번 가는 술집의 화장실은 허름했다. 심지어 테이블과 가까워서 방음도 되지 않았다. 교수가 화장실을 갔다. 졸졸졸. 모두 그 소리를 못 들은 척했다. 한 친구는 더러운 화장실을 보이콧 선언하고 학교 화장실을 가겠다며 일어섰다. 교수는 그 말을 듣고 그 친구의 성별을 부각하며,

더러운 화장실도 써봐야 제대로 문학을 한다, 라고 훈계했다.

물론 친구는 그렇다면 문학은 다음 학기에 이해할게요 하면서 학교로 갔지만 여전히 그 장면이 생생하다. 나는 순진하게 고뇌했다. 박제가 된 천재쯤 되려면 아프고 병들어야 하듯이 한없이 더러운 화장실을 써봐야 문학을 할 수 있나? 나는 인도에서 가장 더러운 화장실도 경험했는데 이제야 최고의 문학인이 될 자질을 가진 건가?

그게 아니란 건 당연히 금방 깨달았다. 문제는 그 발화 이후 주변 반응이었다.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예술이 어디서부터 시작했는지 소개했다. 듣기 거북한 말들이 오고 갔다.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되뇌는 사이 교수는 콩나물이 담긴 그릇을 치우며 계란말이가 더 좋다고 편식했다. 나는 골고루 먹는 게 문학 아닐까요 하며 콩나물 그릇을 교수에게 밀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작은 반항을 시도했다. 날이 선 대답이었지만 교수는 눈치채지 못하고 당돌한 학생을 만났다는 기쁨에 껄껄 웃으며 다시 문학의 의미를 설명했다.

아직도 문학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다만 전하영의 소설을 읽고 짐작 가는 게 하나 있다. 더러운 화장실을 가는 게 문학이 아니라, 그 화장실을 가지 못한 친구의 사연이 문학에 조금 더 가깝다는 것을. 이게 문학이라며 단호하게 말하는 교수가 아니라, 그 자리에서 침묵을 지키라고 강요하는 권위를 폭로하는 게 문학에 조금 더 가깝다는 것을.

혼란한 시기여서 바로잡는 과정이 필요했다. 그렇다고 안도하진 않을 것이다. 나이 많은 남자에게 홀린 “저 아이를 구”하려다 “팔을 친근하게 감”(57쪽)싼 두 여자를 마주칠지도 모르니.

그다음 시절을 위해 지금 가진 확신을 의심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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