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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종수] 댓글 공동체

최종 수정일: 2022년 2월 18일



-네이버 웹툰 <나는 귀머거리다>와 만들어가는 공동체



『장애학의 도전』의 저자 김도현은 당사자주의를 경계하는 것을 넘어 횡단의 정치를 실천할 때 유의해야 할 두 가지 문제를 거론한다. 첫째는 ‘옮기기(타자를 공감하는 것)’의 과정에서 자기중심을 부정하지 않는 것이고, 둘째는 타자를 ‘동질화’하려는 시도를 중단하는 것이다. 결국 횡단의 정치를 추구하는 사회 조직은 “동질적인 하나의 ‘공동체(共同體)’가 아니라 서로 다르지만 함께 행동할 수 있는 ‘공-동체(共-動體)’”로 나아가야 함을 의미한다.


부끄럽게도 ‘배리어프리’(사회적 약자를 억압하는 물리적·제도적 장벽을 허무는 운동)란 단어를 2016년에 처음 알았다. 그전까지 ‘공-동체(共-動體)’는커녕 ‘공동체(共同體)’도 그릴 수 없는, 타자의 위치에서 본인의 특권을 인지하지 못한 삶을 살고 있었다. 나에게 인지되는 ‘배리어’가 없어서 모두 ‘프리’하게 사는 줄 알았다. 이러한 무지의 굴레를 끊게 도와준 것은 다름 아닌 웹툰이었다.


네이버 웹툰 <나는 귀머거리다>는 2015년부터 약 이 년간 연재한 일상툰으로 이 웹툰의 작가 라일라는 청각장애인이다. 이 웹툰은 200화 동안 모든 에피소드를 장애와 연관하여 쉽고 유쾌하게 독자에게 다가갔고, 청각장애인이 일상에서 어떤 제도적·물리적 어려움을 겪는지 보여주었다. 당시 이 웹툰을 처음 감상한 나는 베스트 댓글들의 행태에 대해 의문점이 많았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웹툰을 감상하는 데 방해하는지 구별해내지 못했다. 웹툰이 완결된 이후 (이 웹툰은 현재(2020.02.13. 기준) 모든 화를 무료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의구심을 해소하기 위해 베스트 댓글들의 형태를 세 가지 기준으로 구별해보고자 한다.


베스트 댓글이 웹툰이라는 플랫폼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잠시 살펴보자. ‘능동적 수용자’의 개념을 설명하지 않아도 직감적으로 독자는 매화마다 댓글로 활발하게 작가와 소통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작가 역시도 ‘작가의 말’을 통해 독자의 질문에 대해 답변하기도 하고, 하고 싶은 말을 적어놓기도 한다. 발행과 소비라는 단순한 관계로 이어지는 이전의 특정 예술 형식과 비교하면 웹툰이라는 플랫폼은 매화 연재될 때마다 독자의 반응이나 행태에 따라 작품 자체가 변하기도 한다. 즉 댓글 역시 하나의 작품으로서 기능한다.


<나는 귀머거리다>의 베스트 댓글을 보면 세 가지 감상 기준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로는 ‘일반 감상’이 있다. 어느 일상툰에게나 해당하는 반응으로 독자는 감상한 해당 편에서 가장 공감 가는 부분에 대해 솔직하게 댓글을 남긴다. 이는 ‘귀엽다’, ‘너무 웃기다’ 등과 같은 개인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대부분이다. 둘째로는 ‘특권의 발견’이 있다. 청각장애인과 관련된 웹툰인만큼 청인(청력 손실이 거의 없는 사람, 주로 건청인을 쓰지만 청인 앞의 건강하다는 뜻의 '건'자가 다소 불평등한 함의로 쓰일 소지가 있어 청인으로 표시함)의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보던 독자들이 처음으로 자신의 특권을 깨닫게 되는 지점이다. 이에 대하여 독자들은 ‘이전에 생각하지 못한 부분인데 이제야 알게 되었다.’ 또는 ‘이 작품 덕분에 내가 갖고 있던 차별적인 가치관을 깨달았다.’ 등 편협한 시각을 깨트리고 소수자의 상황에 공감할 수 있게 되었다. 페기 매킨토시는 백인으로서 누리는 일상적 특권을 수집하여 백인특권의 46가지 예시를 발표했다. 이로 인해 많은 백인이 자신의 특권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이외에도 이성애자특권, 계층특권, 문화특권 등 각종 목록을 작성하여 여러 특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웹툰 <나는 귀머거리다>를 본 독자들은 베스트 댓글을 통해 비장애인특권목록을 작성했다. 작가의 일상은 곧 이 목록을 확인하는 작업이었고 자신의 특권을 인지하는 시간이었다. 베스트 댓글의 비장애인특권목록이 만들어진다면 이런 모습일 것이다.


1. 나는 한국영화를 (자막 없이도) 볼 수 있다.

2. 나는 본인 인증 전화가 오면 (도움 없이) 받을 수 있다.

3. 나는 (도우미 없이) 학교 수업을 듣는 데 어려움이 없다.


물론 장애마다 겪는 어려움은 다르지만 이 웹툰을 본 이들은 이런 식으로 비장애인특권목록을 작성할 수 있을 것이다.


세 가지 감상 기준 중 마지막은 ‘차별의 태도’이다. 첫 번째 두 번째 감상 기준과는 다르게 차별을 지양하자는 웹툰의 메시지에 반하여 베스트 댓글이 된 경우이다. 청인이 청각장애인에게 갖고 있는 일반적인 편견은 청각장애인이 오직 수어로만 소통할 것이라는 믿음이다. 작가는 자신이 수어가 아닌 구화(입술 움직임을 읽고 대화)를 사용한다고 4화에서 밝히는데 이것에 대한 베스트 댓글은 작가가 소리만 안 들릴 뿐 명문대에 간 대단한 분이라고 치켜세우는 내용이다. 이는 ‘소리가 안 들리는’ 문제를 갖고 있는 장애인임에도 불구하고 대단한 성과를 올렸다는 뜻으로 ‘장애’ 자체를 비정상적인 문제로 규정하고 있다. 또한 작가가 ㄱ과 ㅈ 받침을 발음하는데 어렵고 소통이 안 될 때가 있다고 토로하는 화에서는 말하지 말고 손으로 가리켜 메뉴를 주문하면 된다고 꾸짖는 예도 있었다. 이 댓글 역시 한 사람의 어려움을 공감하지 않고 특정한 기준으로 타인을 쉽게 재단하는 문제를 갖고 있다. 이처럼 익명의 공간에서 수천 명의 사람이 댓글을 작성할 때면 아무리 차별을 철폐하자는 메시지를 발신하더라도 정반대의 의견이 나올 때가 있는 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화가 진행될수록 세 번째 감상 기준은 점점 사라진다는 것이다. 아울러 베스트 댓글에서는 이러한 차별적인 댓글이 나올 때마다 스스로 정화하는 기능을 갖는다. 일례로 56화의 베스트 댓글에서 ‘장애우’라는 표현을 쓴 경우가 있었는데, 많은 베스트 댓글의 지적으로 그 댓글은 ‘싫어요’를 받고 베스트 댓글란에서 사라졌다. 또한 마지막 화에 가까워질수록 자신의 장애를 드러내고, 자신의 차별 경험마저 공유하는 베스트 댓글이 늘어났다. 결국 <나는 귀머거리다>의 베스트 댓글의 흐름을 보면 특권을 인지하는 것에서부터 차별적인 댓글을 지적하고 수정하며, 집단 내부에서 공감하는 언어를 드러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냈다. 결국 이 베스트 댓글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최근 ‘공존’이라는 키워드에 주목하고 있다. ‘차이’에도 불구하고 ‘함께’할 수 있는 ‘공동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와 다르다고 내치는 것으로는 무엇도 해결할 수 없다. 누구도 뒤처지지 않고 배제되지 않은 채 함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공-동체(共-動體)’가 많아지기를 희망한다.




참고문헌

김도현, 『장애학의 도전』, 오월의 봄, 2019.

김지혜, 『선량한 차별주의자』, 창비,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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