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수] 다들 연애는 잘하시나요.


# 이별

첫 연애가 끝나고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정말 이렇게 끝이라고? 그동안 맛집도 함께 가고 여행도 다니고 선물도 주고받고 기념일까지 꼬박꼬박 챙겼는데, 이별을 겪고 하루아침에 아무것도 아닌 관계가 되었다. 누구보다 친하고 누구에게도 못하는 얘기까지 나누었던 2년이라는 시간이 무색하게 이별은 다음 날 아침부터 바로 효력을 발휘했다.


연애는 0 아니면 1. 만나거나 헤어지거나. 그 중간 어딘가에서 배회하는 ‘썸팅’으로 시작해서 완전한 사랑인 1이 되었는데, 왜 이별할 때는 바로 0으로 추락하는지 의문이었다. 추락하기 직전 유예기간이라도 주어야 이별의 후유증을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았다. 0에서 1로 가는 여정을 ‘썸띵’이라고 한다면, 이별할 때도 마찬가지로 1에서 0으로 가야 한다. 그건 아무래도 ‘낫띵’이었는지 헤어지면 곧바로 다음 날 연인 사이는 아무것도 아닌 사이가 되었다. ‘연애’라는 제도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 찬 그날에 다짐했다. 절대 다시는 연애하지 않기로.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두 번째 연애를 시작했다.

# 독점적 관계

두 번째 연애가 끝나고 ‘연애’에 대한 불신은 더욱 커졌다. 두 번째 이별 끝에 깨달은 것은 바로 ‘연애’를 제외하고 이 세상에 독점적인 관계는 없다는 것이었다. (있나요?) 물론 친구를 독점하고 싶을 때가 있다. 한 친구와 ‘베프’ 관계를 (자연스럽게 또는 인위적으로) 맺고 서로 암묵적으로 독점하는 관계를 유지한다. 그러나 이 친구 사이에서의 유사 독점 관계는 ‘연애’와는 다르게 아슬아슬하게 이어질 수밖에 없다. 한 친구가 독점 상태를 거부하는 순간 다른 친구는 이 독점 관계를 요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친구 사이에서 독점 관계 요구는 ‘집착’으로 간주한다. 이 문제에 대한 해결 방안조차 ‘취미’를 찾거나 ‘운동’을 하거나 다른 ‘동호회’에 들어가서 본인의 인생을 찾으라는 것이다. 결국 친구 사이에서 독점 관계를 요구하고 싶은 사람은 사회적 함의로 인해 자신의 행동을 검열하고 조정한다.


반면 ‘연애’에서는 독점 관계를 요구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상대방에 대한 너무 심한 소유욕은 ‘연애’에서조차 ‘집착’으로 간주하지만, 어느 정도의 독점 관계는 당연하다는 듯이 허용된다. 연인 관계에서는 그러한 독점에 대해 ‘취미’를 찾으라든지, ‘운동’을 하라든지, ‘동호회’에 들어가 자신의 인생을 찾으라고 하지 않는다. 반대로 연인 사이에서 독점하는 경향을 보이지 않으면 사랑하지 않는 것이라고 짐작한다.

# 폴리아모리, 비독점적 다자 연애

독점하는 ‘연애’에 대한 극복 방법으로 비독점적 다자 연애인 폴리아모리 관계가 있다. 그러나 폴리아모리 또한 (각자 다르고 많은 경우가 있겠지만) 상대방과 연애하고 이별한다. 두 명의 애인을 둘지 세 명의 애인을 둘지 함께 상의하고, 가벼운 만남은 서로에게 알려줄지 안 알려줄지 결정하고, 이 관계를 더이상 지속하기 어렵거나 상대방에 대한 애정이 식었을 때는 이별의 절차를 밟는다. 결국 한 명에서 두 명 또는 세 명으로 늘어난 관계가 과연 나에게 비독점적으로 느껴질지 의문이다.

# ‘연애’라는 플랫폼

‘연애’는 나에게 플랫폼 같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연애’를 통해 그 사람과 만나야 한다. 마치 치킨을 먹고 싶으면 그냥 가게에서 시켜 먹으면 되는데, 조금 더 편한 서비스를 받고자 배민 같은 플랫폼을 이용한다. 결국 그 플랫폼은 수수료를 올리고, 이상한 광고를 집어넣어서 내가 먹고 싶은 치킨은 먹지 못하고 남들이 원하는 다른 메뉴를 고르게 된다. 나에게는 그래서 사랑도 내가 원하는 사랑이 아닌, 남들이 함께 만들어간 ‘연애’라는 플랫폼에 우겨넣은 사랑을 하는 것 같다.


플랫폼 없이 나에게 맞는 사랑을 하고 싶다. ‘연애’를 통한 상상력이 닫힌 사랑이 아닌, 이별로 인해 하루아침에 남이 되는 사이가 되지 않는, 그런 사랑을 하고 싶다. 물론 아직 어떤 사랑을 원하는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연애’를 당장 철폐하자는 것도 아니다. 단지 조금 더 잘 사랑하기 위해서, 더 잘 ‘연애’하기 위해서 함께 고민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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