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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빈] 논문쓰기 싫어서 쓰는 논문 이야기

최종 수정일: 2023년 5월 31일



대학원을 진학할 때만 하더라도 청년세대 연구가 하고 싶었다. 청년세대 담론이 기성세대에 의해 구성되는 것에 대한 불만이 컸고, 청년세대 스스로가 재현해내는 '진짜 청년세대'의 담론을 유튜브를 통해 보고 싶었다. 막상 대학원에 진학하고 나서보니 청년세대 보다는 유튜브에 더 관심이 많아졌다. 처음 석사 논문 세미나 시간에도 '시니어 유튜버'를 연구하고 싶다고 계획서를 써가기도 했었다. 그러자 교수님께서는 '조금 더 재미있고, 본인이 하고 싶은 주제를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조언을 해주셨고, 그렇게 나는 '아나운서 되기'의 과정에서 아나운서 준비생들이 어떤 정체성을 형성해나가는지에 대해 석사 학위 논문을 쓰고 있다. 언론인과 관련된 주제는 주로 언론대학원(특수대학원)에서 자주 다뤄지곤 하는데, 미디어문화연구를 전공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는 어떠한 학문적 기여를 할 수 있을까? 그보다도 앞서 나는 왜 '아나운서 준비생'을 주제로 석사 학위를 쓰겠다고 마음 먹었을까?


아나운서는 나의 오랜 꿈이었다. 중학교 시절 방송부는 흔히 '잘 나가고 힙한' 부서였다. 당시 2학년 방송부원에 소위 '얼짱' 남자 선배들이 두 명이나 있었기에 여학생들에게 선망의 동아리기도 했던 방송부에 정작 내가 들어가게 된 계기는 단순했다. 1학년들은 학기 초에 관습적으로 동아리 부서의 홍보를 듣게 되는데, 그 때 방송부를 홍보하러 들어온 3학년 선배의 '말빨'에 홀려 방송부에 지원하게 된 것이다. 당시만 하더라도 아나운서로서 할 수 있는 것은 특정 인원을 부를 때 '~학년 ~반 ~~~내려와 주십시오' 라든가, 점심시간 가요방송을 틀 때 '이번 곡은 ~~~입니다'라고 하는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이크 앞(다시 생각해보면 요즘 BJ들이 쓰는 저가용 마이크였다)에 섰다는 사실은 아나운서의 꿈을 시작하기에 충분한 경험이었다.

남자 고등학교로 진학하고 나서는 모든 게 낯설었다. 사회적인 통념상 그리 '남성적'인 사람이 아니라고 지레 겁을 먹어서인지, 활발했던 중학생 때의 모습은 어디가고 조용한 서우빈만이 남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해보고 싶었던 것은 방송부 활동이었다. 그러나 남고라는 특수성 때문이었을까? 말도 안되는 면접부터 뽑히고 들어가고 나서 시작된 선배들의 말도 안되는 갑질과 선배놀이에 한 달도 채 되지 않아서 방송부를 나오게 되었다. 그렇게 대학교 1학년 1학기 때까지 '방송'이란 이러한 '갑질'을 견뎌야하는 곳이라는 생각에 조금은 먼 꿈이 되는 듯 했다. 그러다 대학교 1학년 1학기 때 학교에서 '비전 스피치'라는 대회에 나가게 되었는데,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발표를 하며 내가 얼마나 마이크를 잡고 무대 위에 서는 것을 좋아하는 지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하지만 2년 임기제인 교내방송국 특성상 이미 모집이 끝난 상태였는데, 우연히도 추가 모집이 열렸고 아나운서부는 to가 없어 제작부로 지원하게 되었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교내방송국에만 남아 있으면 피디는 기자든 아나운서든 뭐든 경험해볼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긍정적인 마음가짐 때문이었을까 겨울방학을 지나며 아나운서 국원들이 방송국을 나가 아나운서 자리가 비게 되었고, 나는 그렇게 교내방송국 아나운서가 되었다. 교내 방송국 생활은 '아나운서'라는 꿈을 확고히하게 되는 경험이었다. 기성 아나운서처럼 아나운서 교본을 통해 아나운싱을 배우며, 뉴스와 라디오 진행을 하면서 매 순간순간이 너무 행복했다. 특히 스튜디오에 들어가 내 앞에 마이크가 주어졌을 때의 두근거림을 아직도 잊지 못하는데, 이 느낌은 이런 저런 작은 경력을 쌓은지 4년이 넘어가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렇게 나는 내가 아나운서가 될 줄 알았다.

그러나, 본격적인 아나운서 준비를 마주하며 내가 부딪힌 벽은 '외모'라는 큰 벽이었다. 사실 아나운서를 준비했다면 외모와 관련해서도 많은 생각들을 했어야 했는데, 내가 경험했던 방송은 주로 '라디오'에 한정되어 있어서 외모의 중요성을 피부로 크게 느낄 일이 없었다. 오히려, 외모라는 건 내게 많은 상처만을 떠올리게 했다. 중학교 시절 나를 괴롭혔던 친구들이 연영과에 지원해 1차를 합격했다는 소식을 수능이 망하고 집에서 재수학원을 알아보는 과정에서 들었다. 결과적으로 그들도 입시에 실패(했다고 들었다)했지만, '외모'라는 권력으로 좋은 대학을 간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불합리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지금 생각하면 너무도 웃기지만) 부모님께 '재수학원 보내줄 돈으로 나도 성형을 시켜달라'고 조르기도 했었다. 다행히 이제는 '외모가 전부는 아니다'고 생각하지만, 아나운서 준비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다시금 '외모가 전부일지도 모르는 상황'을 마주해야 했다.


연구를 위해(사실 연구를 핑계로) 아나운서 아카데미에 다니기도 하고, 연구를 위해 다양한 아나운서 준비생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면서 나는 다시금 '외모'에 대한 중요성을 재확인하게 되었다. 모두 다 지상파 정규직 아나운서를 꿈꾸며 아나운서 준비 시장에 진입하지만 그 과정에서 선택되는 인원은 극소수에 달하며 나머지는 비정규직/계약직 아나운서로서 연명하게 되고, 그 기회 마저도 '외모'와 같은 매력 자본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아나운서를 잠시 유보하며 대학원에 진학한 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되었다. 이러한 현실을 비판하는 위치에 설 것인가, 내가 '선택한 일'이기에 순응하며 외모를 가꿀 것인가. 결과적으로 보자면 지금 그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으려는 상황이 벌어졌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더 논문이 소중해졌다. 이러한 경험들을 통해 나는 논문에 무슨 말을 얹을 수 있을까. 나아가 나는 어떤 아나운서가 될 순 있을까? 모든 것들이 불안정한 것들 투성이지만 마이크를 잡을 때의 떨림을 되새기며 나는 오늘도 글을 쓰고, 화장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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