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을 키우고 있습니다
식물을 키우고 있다. 일년쯤 되었다. 무언가에 몰입하면 지나치게 깊게 파고들어버리는 고약한 성격 탓에 집은 사람이 사는 집보다 식물이 사는 온실에 가까워져 버렸다.
시작은 단순했다. 으레 선물로 주고받아 아름다운 모습으로 왔다가 결국엔 시들해지는 식물을 살려보고 싶었다. 사무실에 놓인 식물 사진을 찍어 가드너들이 모여있는 어플에 올렸다. ‘이 식물의 이름은 무엇인가요? 죽어가고 있는데 어떻게 해줘야 할까요?‘ 화분이 너무 작은 것 같으니 옮겨주라는 말과 함께 ‘필로덴드론 레몬라임’이라는 어렵고도 요상한 이름도 알게 되었다.
새로이 알게된 이름으로 검색해보니 풍성하고 생기 넘치고 아름다운 식물 사진이 많이도 나왔다. 눈앞에 있는 이 식물이 그 식물이라고? 그리고 대부분의 열대식물은 줄기를 잘라 물에 꽂아놓으면 새로이 뿌리가 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곧바로 가위를 들었다. 스쳐지나갈 때 식물은 그자리에 늘 그렇게 똑같이 있는 줄 알았는데 매일 보니 매일이 달랐다 뿌리가 매일 0.5mm 쯤 자라는 것이 정말로 눈에 보였다. 이 식물이 지금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식물이자, 사랑하는 이들에게 선물하는 식물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서른 개 쯤 되는 식물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필로덴드론 레몬라임의 비포 & 애프터
우리가 매번 식물을 죽이는 이유는 알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상에 물을 주지 않아도 되는 식물, 매일 물을 콸콸 주어도 되는 식물, 빛이 없어도 되는 식물, 전자파를 흡수하고 미세먼지를 흡수하도록 사무실 깊숙한 곳에 살아도 알아서 잘 자라는 식물은 없다. 각각의 식물군마다 자생지가 있고 인간의 욕심으로 살 곳을 옮긴 식물에게는 최소한 그 엇비슷한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예의이다. 식물마다 어떤 흙, 어떤 빛, 어떤 습도, 어떤 물주기, 어떤 바람을 주어야 하는지 기억하는 것이 이 취미의 시작이다.
식태기를 아시나요?
영원할 것만 같던 사랑도 위기를 맞듯, 식물을 사랑하는 마음에도 '식태기(식물 권태기)'라 불리는 시기가 찾아오고는 한다. 인기가 많아지며 너무 비싸져버린 식물 가격에, 갑자기 생겨나 식물을 공격하는 벌레 때문에, 과한 애정으로 물이나 비료를 너무 쏟아 찾아온 과습 때문에 등등. 식태기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다. 나에게도 어느날 자연스럽게 무뎌짐이 왔다. 식물에게 빛은 주고 싶고, 눈이 부신 것은 싫어 커튼과 커튼 사이 식물을 두었는데 눈에 잘 보이지 않으니 마음에서도 조금씩 멀어졌다.
밝은 곳에 두고 물도 때때로 잘 줬는데도 며칠 만에 식물들을 들여다보다 무시무시한 벌레 ‘응애’를 발견했다. 응애는 한번 생기면 완전 박멸하기가 어렵고 약에도 내성이 강해 약처리를 할 때마다 새로운 약으로 바꿔주어야 한다. 초반에 잡지 못하면 잎에 하얀 흔적, 줄기 사이사이에 거미줄 같은 흔적을 남기다가 결국 식물을 죽인다. 도대체 어디서 나타난 건지 알 수 없었지만 모든 식물의 잎을 뒤집어보며 응애에 점령당한 식물을 따로 격리하고, 새 흙으로 갈아주고, 약을 치고, 매일 젖은 수건으로 잎을 닦아 벌레를 잡았다.
식물에게서 사랑을 배웁니다
남들은 벌레에 지쳐 가드닝을 관두기도 한다던데, 나에게 일어난 일은 그 반대였다. 그 식물은 끝내 회복해 지금은 집에서 가장 큰 식물이 되었지만, 여전히 응애자욱은 남아있다. 그게 꼭 ‘사랑받지 못한 티’ 같아서 잎 한 장 한 장을 닦으며 반성하고 또 반성했다. 적당한 책임을 다 하면 알아서 잘 지낼줄 알았는데. 식물에게는 적절한 환경 뿐만 아니라 시간과 관심이 필요했다.
그 관심을 매일 쏟게 되면서 신기하게도 애정도 다시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식물이 예뻐서 공을 들이는 것이 아니라 식물에 노력을 쏟고 그것이 애정으로 변해가는 과정. 우리는 쉽게, 사랑하니까 노력하는 것이라 말하지만 사실 사랑은 의지와 노력에서 차오르는 것이 아닐까. 사랑은 사랑받는 대상의 매력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발견해주는 사람의 사랑 에너지, 자신의 마음을 선뜻 나눌 수 있는 힘에서 오는지도 모른다. 노력하면 보이기 때문이다. 속속들이 예쁜 구석과, 매일매일 보여주는 변화들이.
오늘도 흙과 잎을 만져보며 하루를 시작하고 습도가 떨어지지는 않는지 확인하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그것이 내가 사랑 에너지를 쌓아가는 방법이자 식물을 사랑하는 방법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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