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노트2] 반려동물 '문화'? 존재론적 전회와 문화연구는 공명할 수 있을까?

7월 30일 업데이트됨



지난 칼럼에서 나는 '존재론적 전회'라는 새로운 연구 흐름을 범박하게 소개하면서 글 말미에 '반려동물'을 이 관점에서 접근해보겠다는 나의 연구관심을 밝혔다. 그리고 지난 한달간은 연구계획을 세워보았는데, 이 과정에서 내가 고민했던 것들, 특히 몇 번이고 '이게 아닌가?', '이렇게 해도 되나?'라고 되묻게 했던 것들을 이번 노트에서는 공유해볼까한다.


첫 번째 난관은 연구주제와 대상을 선정하는 단계에서 '문화'라는 개념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라는 문제였다. 몇해 전, '반려동물'을 연구해보겠다는 생각을 처음 했을때만해도 나는 반려동물을 근래 우리 사회에 출현한 새로운 문화적 현상 정도로 생각했다. 반려동물이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특히 애완동물을 '반려동물'이라고 달리 명명하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이 전치 과정에 주목해 보겠다는 아이디어를 가진 상황에서 내가 선뜻 떠올린 이론들은 부르디외와 영국의 현대문화연구소(CCCS)에서 출간된 <Doing Cultural Studies>(1997)의 소니 워크맨(Sony Walkman)연구였다.


부르디외는 문화라는 것이 일종의 상징형식으로서 그것만의 사회적 정당성(인정과 승인)을 선점하기 위해 행위자들간의 끊임없는 갈등과 투쟁이 발생하는 고유한 사회공간이라고 정의한다. 이와 같은 견지에서 그는 <중간예술>, <구별짓기>와 같은 저작에서 사진을 개개인의 즉흥적 작업물이 아니라 보통의 사람이라면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평범한 매체로서 계급적 취향이 작동하고, 이들의 사진행위는 공인된 순수예술과 실용기술 사이에 위치한 완전히 공인되지 못한 '중간'적 예술의 성격을 띤다고 설명한 바 있다. 반려동물을 하나의 문화적 상품 혹은 대상(object)으로 정의한다면 , 우리는 미학적 규칙체계와 같은 위계적 지식에 대한 학습과 훈련 없이도 반려동물을 '귀여움', '사랑스러움', '즐거움'과 같은 일상적인 감각으로 경험할 수 있고 '반려'라는 특정한 실천 도식을 통해 그것만의 신념 혹은 집단적 믿음으로서의 일루지오(illusio)를 만들고 있다고 설명할 수 있다. 부르디외는 의상, 요리, 화장술 등 일상의 실용적 미의식과 관계된 장르를 ‘자의성의 영역’(sphére de l'abitraire)으로 분류하는데 그가 언급한 적은 없지만 반려동물도 이 영역에 배치하면 되지 않을까?


소니 워크맨(Sony Walkman)연구는 문화상품의 생산, 유통, 소비 전 영역을 탐구하는 문화회로(circuit of culture) 모델을 통해 워크맨이라는 개인음향장치가 198-90년대 영미권 사회에서 유행하던 현상을 설명한다. '걸으면서 음악을 듣는다'는 이 새로운 장치의 유행은 광고 등을 통해 특정한/표준화된 문화코드를 생산하고 유통시키는 문화산업과, '반사회적이고 개인화된' 라이프스타일을 규제하려는 행정, 그리고 특정한 라이프스타일을 통해 자신을 정체화하려는 소비자의 실천들이 서로 순환하고 교차하는 문화적 텍스트이다. 반려동물 산업은 소니와 같은 생산주체를 특정할 수는 없지만 반려동물에 대한 다양한 재현물들이 축적되어 왔고 관련 산업의 성장은 물론 특정한 라이프스타일과 이를 관리하려는 행정이 맞물려 있다고 생각해볼 수 있다. 결국 부르디외와 워크맨 연구를 떠올린 까닭은 반려동물을 계급적 취향이 작동하는 문화적 대상으로 규정하고 '자의성의 영역'에서 애완동물이 반려동물로 전치되는 과정을 하나의 문화텍스트로 탐구해보겠다는 기획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게 최선일까? 이것으로 충분한가? 나는 내가 공부해왔던 것들 중 반려동물을 논의할 수 있는 최선의 이론과 분석 틀(적어도 내가 할 수 있는)을 구상한 그 순간에 뭔가 내가 설명하고 싶었던 경험과 연구 계획이 잘 들어맞지 않는다는 생각에 빠졌다. 십년이 넘는 시간동안 서로 얼굴을 부비고 사랑해왔던 나의 반려묘를 문화상품이라고 정의하는 것으로 나와 고양이의 관계를 충분히 담아낼 수 있는 것일까? '나와 고양이는 가족입니다'라고 설명할 때 내가 부담해온 불편한 시선들과 그럼에도 이것이 진정성 있는 발화로 받아들여지길 희망하는 것이 문화적 인정을 얻기위한 상징 투쟁일 뿐일까? 즐거움이나 사랑스러움이란 감정 외에 내가 반려동물에 갖게되는 책임감이나 폭력에 노출되었거나 유기된 동물들의 소식에 정동하는 나의 윤리적 감각은 문화분석에 포함시킬 수 있는 것일까? 이런 질문의 연쇄 속에서 나는 이 연구틀에 전제되어 있는 '문화'개념이 '삶의 방식'으로서의 문화가 아니라 상징이나 재현의 층위에서만 작동하는 제한적인 것은 아닌지, 반려동물을 의미있는 타자의 위치에 배치할 수 없게 만드는 비대칭적 구도가 이미 문화라는 정의 상에서 작동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라는 의심을 하게 되었다. 그럼 이 연구문제를 위해 문화를 대체할 언어가 있을까?


이 고민에 빠져들면서 나는 내가 정말 논의해보고 싶은 부분은 반려동물의 상징적 의미가 아니라 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삶의 방식' 자체에 있으며 이를 밝혔을 때만이 반려동물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를 짚어볼 수 있을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다만 기존 학계 혹은 사회에서 통용되고 있는 문화라는 개념과의 혼란이나 오해를 줄이고 연구의 목적을 좀 더 구체화하기 위해 문화를 대체할 개념어가 필요하다.


연구주제를 다시 정리해보자. 나는 이제 반려동물에 동반되는 문화/상징형식이 아니라 사회 공간 안에서 반려동물과 인간의 결합체가 촉발시키는 트러블에 집중하겠다라는 방향을 잡았다. 이는 ‘인간적인 것’ ‘사회적인 것’이란 경계가 선험적으로 혹은 본질적인 것으로 고정된 것이 아니라 행위성을 갖는 존재들간의 관계적 실천 속에서 창발하고 변화하는 것이라는 존재론적 전회의 공리를 경험연구로 풀어보겠다는 기획이다. 더 구체적으로는 반려동물과 인간의 결합, 이것이 사회의 여러 공간들에서 갈등하는 양상, 양가적 혹은 다중적인 입장들이 경합하고 연합하는 과정에 주목해보겠다는 것이다. 이 맥락들 속에서 내가 포착하고자하는 것 그러니까 연구의 목표이자 가설을 세워본다면... 인간과 동물에 대한 특정한 '태도'와 정향이 생성되고 변형되고 있다는 것일텐데 이를 집약적으로 보여줄수 있는 언어는 무엇일까?


이 막다른 골목에서 나는 다행히 해러웨이(Haraway)의 <반려종 선언>(2019)를 떠올렸다. 그녀는 이미, 반려동물과 인간의 역사를 엮은 단문을 통해 ‘종횡단적 사회성(cross-species sociality)’이 작동해왔음을 설파하고 있었다. 그녀의 글을 여러번 읽었지만 심지어 첫번째 칼럼에 이를 언급하기도 했으면서 나는 이제서야 이 선언을 진지하게 곱씹어본다. 이 글은 '사회성' 자체를 체계적으로 보여준다거나 그 것의 특성을 분석하기보다 역사적 사실들을 채집해서 '종횡단적 사회성'이라는 것이 존재해왔음을 환기시켜 준다. 역사라는 광대한 시간 단위 안에서 논의된 이 사회성을 동시대 한국사회라는 맥락으로 제안해 확인해보겠다는 기획이 적절한 것일지, 또다시 고민이 맞물리지만 더 머뭇거리지 말고 일단 연구를 작심해보기로 한다. 그런데 사회성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구체화해야하나? 이 개념의 구성요소들을 어떤 기준으로 구획해야할까? 인간과 반려동물의 결합체의 연쇄를 따라가다보면 뭔가 더 명확해질 수 있을까? 이 지점이 연구계획서 작업하던 당시의 두번째 고민이였는데 이는 다음번 연구노트에서 좀 더 나눠보도록 하겠다.


대신 칼럼의 제목처럼 존재론적 전회의 논의를 문화연구에 어떻게 접합시킬 것인가에대한 고민을 조금 더 덧붙여보고 싶다. 존재론적 전회의 맥락에서 이론과 연구를 개진하고 있는 대칭인류학이나 ANT(행위자 연망 이론)의 연구자들은 '문화'라는 개념이 자연과 인간을 이분화하려는 근대적 기획의 산물이며, 민족지학 연구자들의 시선을 문화적인 것에 국한시켜버리는 걸림돌이라고 주장한다. 특히 문화 상대주의 입장의 인류학 즉 다양한 문화적 표상들을 탐구해왔던 인류학 작업들이 자연을 단일한(혹은 보편적) 실재로 만들어 버리고 총체성이라는 틀 안으로 연구를 제한해왔다는 비판을 제기하기도 한다. 나는 이들의 문제의식에 충분히 공감하면서도 문화라는 개념이 역사 속에서 계속해서 확장해왔으며, 이 다양한 정의 중, '삶의 방식'으로서의 문화라는 정의가 함축하는 다종다양한 결들을 환기해보고자 한다. 인간과 인간이 아닌 것들, 자연과 사회라는 구도 속에서 자연이 대상화되거나 도구화되어버린 현실은 이 비대칭성을 극복하려는 노력, 우리 사회가 인간 이상의 것들로 구성되어 왔음을 증명하는 연구들을 통해 다시금 변형될 수 있다. 지금 필요한 작업은 이 노력이 '삶의 방식'이라는 문화 정의 속에 가로새겨지는 것이다.



조회 177회

사단법인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2019 by 김선기. Proudly created with Wix.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