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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승우] '-테리어'의 시대



먼저, 여기서 제목에 쓰인 ‘테리어’는 개의 품종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밝힌다. 여기서 ‘-테리어’란 각종 단어와 결합하여 쓰이는 말로, ‘인테리어’를 의미한다. ‘-테리어’의 용례는 대표적으로 책상 및 서재 환경을 꾸미는 ‘데스크테리어’, 주방 환경을 조성하는 ‘키친테리어’, 욕실을 꾸미는 ‘베스테리어’, 그리고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집 안 환경을 조성하는 ‘펫테리어’ 등이 있다. 이러한 용례에서 알 수 있듯이 ‘-테리어’는 주로, 집 안 환경을 꾸미고 조성하는 인테리어의 유형화에 가까우며, 인테리어가 지닌 함의처럼 우리가 일상을 꾸려나가는 가장 근간이 되는 ‘집’을 자신이 원하는 환경으로 조성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지금은 바야흐로 ‘-테리어’의 시대라 할 수 있다. 유튜브, 인스타그램을 비롯한 SNS에서는 다양한 ‘-테리어’의 종류가 범람하고 있으며, 이와 관련한 다양한 콘텐츠들이 쏟아져나오니 말이다.


사실 이러한 ‘-테리어’는 오래 전부터 존재해왔다. 누구나 자신이 거주하는 ‘집’을 원하는 환경으로 바꾸기 위한 노력을 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만 해당되는 것 뿐 아니라, 이는 주거 양식과 더불어 오래 전부터 숱하게 구성되어 온 실내 디자인 양식과 그 궤를 같이 해왔다. 이러한 ‘-테리어’의 대상이 되는 것은 당연하게도 우리가 일상을 보내는 주거 공간이다. 그리고 이러한 주거 공간은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과정 속에서 구성되는 공간 경험이 구체화되는 가장 대표적인 공간이라 할 수 있다. 더불어서, 주거 공간은 다양한 관계들 - 비단 사람 사이만의 관계만이 아닌, 사람과 사물과의 관계 또한 포함하는 방식의 관계 - 뿐 아니라, 주거 공간을 경유하여 발현되는 다양한 기호적 요소들은 개인의 정체성이 응축되어 있는 하나의 장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따라서 기존의 여러 논의들은 ‘-테리어’의 대상이 되는 ‘집’과 ‘-테리어’를 위한 다양한 수행들을 ‘장소 만들기’, 나아가 ‘자아 만들기’의 일환으로 보는 시각을 제시하곤 했다. 이를테면 특정 소품의 배치를 통한 주거 공간 인테리어와 해당 공간을 직접 자신의 손으로 만들어나가는 과정 자체가 단순히 ‘장소성’을 부여하기 위한 행동을 넘어서, 일종의 ‘집을 수행하는’ 행위이자, 일종의 ‘자아의 기획’의 일환으로 수행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은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 그리고 삶을 영유하는 공간이 정체성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최근들어 우리가 접하는 다양한 ‘-테리어’는 단순히 정체성 구획을 위한 장소 만들기에 국한되지는 않는듯 하다. 지금 여기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과장을 조금 붙인다면 가히 ‘-테리어’의 시대라고 불려도 무방할 듯 하다. 물론 개개인의 알고리즘에 따라 다소 다르겠지만, 우리는 유튜브,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 다양한 SNS에서 매일 각종 ‘-테리어’들을 마주하곤 한다. 보다 일상적인 측면에서 ‘방 꾸미기’를 비롯한 다양한 인테리어부터 시작하여, 보다 부분적인 측면에서 서재방의 책상을 꾸미는 ‘데스크테리어’, 주방 환경을 원하는 방식대로 조성하는 ‘키친테리어’, 그리고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집을 꾸미는 ‘펫테리어’까지 다양한 ‘-테리어’들이 범람하고 있다. 이와 같은 ‘-테리어’들은 다양한 삶의 방식을 반영함과 동시에, 각자의 개성과 정체성을 자신이 거주하는 공간에 부여하고자 하는 일종의 공간 수행이 보다 일상화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SNS라는 매체가 지니는 특성을 고려하면 단순히 자기 자신의 만족에 국한된 것이 아닌, ‘-테리어’를 통해 빚어진 자신의 ‘장소’를 다른 이들에게 공유하기 위한 목적 또한 있을 것이다. 따라서 ‘-테리어’를 거쳐 주조된 자신의 ‘장소’를 SNS를 통해 타인에게 공유하는 ‘랜선 집들이’와 같은 공간적 수행은 단지 자신만의 장소를 만드는 것에서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해당 공간을 타인에게 공유하고 그에 대한 피드백을 받는 것까지 해당될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 ‘-테리어’라는 공간적 수행의 범주는 자신이 구성한 공간을 SNS에 공유하고 그에 대한 반응을 받는 것까지 포함될 수 있을듯 하다.


이러한 점에서 최근 SNS를 통해 접하는 다양한 ‘-테리어’는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여기에는 아마 앞서 언급했던 개성과 정체성을 표현하는 것 외에 다른 의미들이 개입될 수 있을 것이다. 최근의 ‘-테리어’는 SNS를 매개로 공유되고 있다는 점에서 볼 수 있듯이, 타인의 시선으로 보여지는, 즉 타자의 시선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라는 것을 시사한다. 그리고 애초에 다양한 해시태그를 달고 공유되는 ‘나만의 공간’은 그러한 타자의 시선을 상정하고 구성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나만의 공간’은 단지 ‘나만을 위한’ 공간이 아닌, ‘타인의 눈에도 보기 좋은’ 공간이어야 한다. 따라서 이러한 공간은 낯설고 불편한 것 대신, 다수의 시선에 익숙하고 받아들여질만한 것, 더불어서 남루함이나 복잡함은 사회적인 약속에 의해 구성된 보다 깔끔하고 세련된 양식들로 채색된다. 그리고 이와 같은 다양한 시각적 기호들로 구성된 집, 방, 공간들이 최근의 ‘-테리어’의 주된 트렌드로 제시되곤 한다. 많은 경우, 이러한 트렌드는 ‘-테리어’를 구성하는 특정한 상품 기호들로 대체된다. 일례로 ‘-테리어’의 일종인 데스크테리어의 경우, 많은 경우 서재를 깔끔하고 세련된 방식으로 빚어내는 다양한 기호들이 제시된다. 00브랜드의 소가죽 데스크 매트, 고급스러움을 자아내는 한 다스에 10만 원 짜리 연필 세트, 그리고 그것들을 품격있게 배치하는 명품 연필 꽂이와 같은 것이 이에 해당할 것이다. 여기서 서재라는 공간, 그리고 서재에 위치한 책상 위 라는 공간이 지닌 본래의 의미는 탈색된다. 단지 영화의 한 장면과 같이 꾸며진 외형과 그를 구성하는 다양한 브랜드, 그리고 그에 덧 씌워진 기호적 이미지만 있을 뿐이다. 이러한 ‘-테리어’들, 그리고 ‘-테리어’라는 공간 실천이 지닌 기존의 함의인 개성과 취향의 반영과 정체성의 구획, 그리고 그것으로 구성되는 자아의 기획은 역설적으로 그를 뒤덮는 기호적 이미지와 스타일이라는 물신에 밀려나게 된다.


물론 이는 ‘-테리어’로 제시되는 다양한 인테리어들이 SNS가 일상화 됨에 따라, 특정 SNS에서 주로 나타나는 특성이 반영되어 이렇게 나타난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모든 ‘-테리어’가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상품 물신으로 인한 기호화된 형태로만 제시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몇 년 간 SNS 등지에서 숱하게 제시되는 다수의 ‘-테리어’들은 ‘나만의 공간’에 국한되지 않고 ‘전시를 위한 나의 공간’이라는 성격으로 제시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공간들은 ‘나름의 표준’을 만들어가며, 비슷한 외형의 공간을 재생산하며, ‘-테리어’라는 공간적 수행을 상품 기호의 소비의 자리로 대체시키고 있다. 사실 이것이 마냥 부정적인 것은 아닐 수도 있다. 나 역시 많은 부분 이러한 ‘스타일’들을 참조하여 방을 만들어가기도 했으며, 여러 ‘-테리어’들이 제시하는 상품들을 소비하고 있으니 말이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에서 이와 같은 소비는 피할 수 없는 것일수도 있을 것이다. 더불어서 “‘-테리어’의 진정성은 소비에 있지 않다”라는 쉰소리를 할 생각 또한 없다. 하지만 여전히 이와 같은 현상에는 다소 경계의 눈초리를 보내야 하지 않을까? 덧붙여서, ‘-테리어’의 방식이 물신화된 스타일, 기호화된 상품의 소비에 국한되어 있다면, 그리고 이것이 SNS를 비롯한 새로운 매체로 인한 관계성의 변화에서 비롯된다면, 다층적인 측면에서 그것이 지닌 사회적 의미에 대해 보다 깊이 있는 분석이 요구되어야 하지 않을까? 오늘도 다르지만 비슷한 외향을 소개하는 ‘-테리어’ 콘텐츠를 접하며, 여지없이 그에 딸려있는 예닐곱개의 상품 링크를 본다. 늘 같지만 다른 것들. 다르지만 같은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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