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많은 이들이 지적했듯이, 코로나19(Covid19)는 우리 일상의 많은 부분을 재편하고 있다. 전염성이 강한 코로나19의 특성으로 인해 방역 시스템, 감염자 역학 분석에 대한 다양한 교범이 제기 되었으며, 이는 사회 복지, 시민의식과 같은 측면과 결합하여 특정 사회의 역량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와중에 일상의 영역에서는 전염병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사회적 거리두기’와 같은 실천이 촉구되고 있으며, 어느덧 이는 코로나19 시대의 일상적 윤리로 자리매김 하였다. 한편, 코로나19로 인해 변화된 사회-정경은 그간 드러나지 않았던 다양한 사회 공간 내 취약한 부분을 노출하기도 한다. 물론 전염병 방지가 시급하다는 사회 내 암묵적 동의(?)에 의해 이에 대한 논의는 아직까지 문제제기에 그치고 있거나, 방역에 무게를 둔 논리에 의해 많은 부분 기각되고 있다. 이러한 사회상의 변화는 코로나19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바이러스가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부분의 모순을 가늠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로 작용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코로나19 이후의 사회-정경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아마도 ‘언택트’가 아닌가 싶다. ‘언택트’는 ‘접촉하다’라는 의미를 가진 ‘컨택트contact’에 부정의 의미를 가진 접두사인 ‘언un-’을 합성한 조어다. 이 용어는 기술 발전으로 인해 등장한 유튜브, 넷플릭스, 키오스크와 같은 대면 접촉이 없는 새로운 소비 경향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팬데믹 국면으로 들어섬에 따라, 전염병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 국면에서 일상적 실천으로 그 용례가 확장되고 있다. 이러한 언택트로 인해 구성된 사회상은 코로나19가 장기화됨에 따라, 사회 내 일상-정경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하지만 언택트로 인해 구성된 정경, 그리고 바뀌어가는 삶은 모두에게 균질하게 다가가고 있을까? 그리고 언택트가 기술 및 유통의 혁신에 기인했다고는 하지만 이와 같은 언택트적 일상은 과연 비접촉 기술에만 의존하고 있을까?
미국의 경제학자 로버트 라이히(Robert Reich)는 한 칼럼에서, 코로나 시대 이후 계급 구성이 변화하고 있으며 그에 따른 계급 불평등의 양상도 변화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그는 코로나19 이후의 계급을 “원격 노동자The Remotes”, “필수 노동자The Essentials”, “무급자The Unpaids”, “잊혀진 이들The Forgottens”로 명명한다. 먼저, “원격 노동자”의 경우, 전문적 지식을 갖추고 온라인 상에서 자유롭게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이들로, 재택근무를 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춘 이들이다. 이들은 앞서 언급한 언택트의 소비 방식과 실천 윤리를 무리없이 수용할 수 있으며, 지금과 같은 재난 상황에서 이를 적극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유무형의 자본을 갖춘 이들이다. 그리고 “필수 노동자”는 업무적으로 언택트를 수행할 수는 없지만, 의료진, 위생 관련 노동자, 배달 노동자, 경찰, 소방관 등 재난상황에서 필수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이들로, 이들은 외부에서 타인들과 접촉하기에 재난 상황에서 항상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무급자”는 소규모 업장이나 제조업에 종사하는 이들로 언택트 시대에 일자리를 잃게 되는 이들에 해당한다. 그리고 “잊혀진 이들”은 불법체류 이민 노동자, 이주민 농장 캠프, 노숙자, 간병 시설 등에 있는 이들로 사회적으로 비가시화 되어왔고, 여전히 비가시화되는 이들을 일컫는다.
코로나 국면에서 로버트 라이히가 제시한 계급의 4가지 유형이 시사하는 바는 비교적 명료하다. 원격 노동을 수행할 수 있는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로 새롭게 계급이 분화되고 있다는 것. 즉, 원격 노동을 수행할 수 있는 이들, 그러니까 언택트 시대의 윤리에 부합되는 이들은 전염병으로부터 비교적 안전하고 경제적 타격도 적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은 항상 전염병에 노출되어 있으며 경제적 상황 역시 불확실한 상황에 놓여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며칠 전, 전자 상거래 업체의 한 물류센터에서 발생한 코로나 집단감염 사태는 시사적이다. 많은 이들의 ‘사회적 거리두기’를 가능케하는 언택트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는 노동자들은 정작 언택트가 아닌 컨택트를 기반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언택트를 수행하는 이들에 비해 더욱 엄격하게 지켜져야 할 그들의 안전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 일상에서 ‘사회적 거리두기’가 가능한 것은 수많은 이들의 ‘컨택트 노동’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컨택트 노동을 수행하는 이들은 그들이 수행하는 노동의 성격부터, 노동 공간, 환경 등 그들의 일상 곳곳에서 숱한 위험과 접촉하고 있으며, 따라서 코로나19라는 전염병에 감염될 확률 또한 높다. 하지만 그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언택트 경제는 결코 돌아가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들의 노동 환경은 여전히 열악한 상황에 놓여있다. 이는 언택트 경제를 지탱하는 컨택트 노동이 비숙련 임시 노동자를 바탕으로 구성되어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코로나 집단감염이 발생한 물류센터는 대부분 비정규직 초단기 파트타임 노동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짧게는 하루 단위의 계약을 맺은 노동자들이 북적거리는 통근 버스를 타고 물류센터에 투입되고 있으며,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발생한 배송물량의 증가는 더 많은 한시적, 일용직 노동자들의 접촉 노동을 필요로 하게 된다. 하지만 그들의 노동 환경에 대한 철저한 방역과 위생은 어떨까? 게다가 노동 공간에서 뜻하지 않게 감염된 노동자들은 이후에 어떻게 될까? 이 두 가지 질문에 그 누구도 쉬이 긍정적인 답을 하지는 못할 것이다.
한편, 코로나 국면에서의 언택트에 대해 논할 때, 언택트 경제 이면의 숱한 무임금자들을 빼놓고 언급하기 힘들다. 이러한 무임금자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위한 업장 폐쇄로 몇 달 째 임대료만 지불하며 영업을 하지 못하는 영세 소상공인, 공연예술가들, 그리고 그들에 의해 고용된 다양한 직군의 파트타임 노동자들로 구성된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한 일상의 언택트가 장기화됨에 따라 이들의 무임금 상태 역시 지속되는데, 이들 중 다수는 당장의 생계를 위해 건강보다 경제 활동을 고려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이들은 앞서 언급한 물류센터와 같이, 언택트 경제를 지탱하기 위한 컨택트 노동을 수행하게 될 것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전염병 감염의 위험에 노출되게 될 것이다.
물론 이와 같은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하루 속히 코로나 국면이 진정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좋든 싫든 우리는 일상에서 철저하게 위생 수칙을 지키며,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속해야만 할 것이다. 물론 언택트 소비 역시 한동안 지속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이러한 언택트한 일상 이면에는 숱한 컨택트가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이러한 언택트한 일상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컨택트한 노동의 조건이 개선되어야 하며, 나아가 언택트와 컨택트 사이에서 잊혀진 다양한 이들에 대한 고려 역시 활발히 논의되어야 한다.
어쩌면 우리 사회를 덮친 코로나19라는 재난은 모든 이들에게 공평하게 다가왔을지도 모른다. 바이러스에 노출되는 순간 사회적 지위, 자산, 성별과 관계없이 누구나 질병에 감염될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로 인한 사회적 피해는 결코 공평하지 않다. 재난으로 인한 경기 침체의 영향을 직격으로 받는 것은 언제나 영세 자영업자들과 비숙련 노동자들이다. 물론 상대적 고소득 직종인 전문직에 종사하는 이들 역시 코로나19로 인한 위축된 경제 상황으로 인해 불이익이 있겠으나, 이들이 받는 타격은 영세 자영업자들에 비할 바 못된다. 더불어서 영세 자영업자들이 받는 타격은 그들이 고용하는 임시직 노동자들의 해고로 이어진다. 또한 특수 고용 노동자들은 어떤가? 이들 역시 각종 계약의 해지와 프로젝트 취소 등으로 당장 생계를 이어나갈 소득이 사라진 실정이다. 이는 코로나19로 인해 재편된 사회적 삶의 불균질함의 정도가 커졌음을 의미한다.
한편, 유튜브와 넷플리스를 위시로 한 여가 생활에서도, 배달 어플과 배송 서비스의 활성화로 인한 생필품 소비와 같은 측면에서도 언택트는 코로나19 시대의 삶의 주요한 실천적 요소로 자리 잡았다. 심지어 각종 교육기관의 강의와 기업 및 단체의 회의, 토론마저 언택트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언택트를 가능케 하는 요소는 언택트와 관련한 기술 및 정보 자산, 그리고 그것을 매개하는 각종 플랫폼 및 기기의 이용/소유 유무에 따른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언택트를 가능케 하는 유무형의 자산을 소유하지 못한 이들은 과연 언택트라는 실천 윤리에 자신의 삶을 온전히 맞추어 살아갈 수 있을까? 또한 이와 같은 언택트적 삶 역시, 그 이면에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컨택트 노동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들의 노동과 노동 환경은 언택트라는 기표에 가려 비가시화 되곤 한다. 이처럼 언택트 시대는 우리에게 다양한 화두를 던진다. 기실 코로나19가 진정된 이후에도, 우리의 언택트한 일상은 지속적으로 확장될 것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언택트를 지탱하는 컨택트 노동이 존재한다. 그런데, 언택트의 시대에 컨택트를 할 수 밖에 없는 그들의 노동 환경은 과연 어떠하며, 그들의 노동 가치는 어떻게 측정되고 있는가. 이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졌으면 한다. 모두가 조금은 더 평등하고 지속가능한 일상을 꾸리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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