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나의 최고의 낙은 목요일 밤 9시다. tvN에서 방영 중인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얼핏 메디컬 드라마인 듯 하지만, ‘한국판 프렌즈’가 되기를 바란다는 제작진의 바람처럼 서사의 방점은 다른 데 있다. 이 드라마는 의예과 동기로 연을 맺어 20년 간 끈끈한 우정을 맺어오고 있는 다섯 친구들의 이야기다. 익준, 정원, 준완, 석형, 송화는 한 병원에 근무하면서 바쁜 와중에 함께 모여 밥을 먹고 밴드 연습을 하며 각자의 내밀한 가족사까지 아는 절친한 사이다. 사실상 배경만 병원으로 바뀐 <응답하라> 시리즈에 가까운 이 드라마에 대해 벌써부터 일부 시청자 사이에는 ‘송화(전미도 분)의 남편은 누구?’를 주제로 대화가 오가고 있다. 아직 홍일점 송화의 뚜렷한 로맨스 서사가 보이지는 않는 가운데, 나는 이 질문이 정말로 이 드라마의 추동력이 되지는 않기를 바란다.
한국 드라마는 이성애 로맨스의 세계다. 장르를 불문하고 이성애 로맨스가 주요한 축이 되는 한국 드라마의 획일성에 대한 비판도 있지만, 그 비판에 동조하고 싶지는 않다. 연애 감정을 다양한 방식으로 구체화해내는 것은 한국 드라마가 지닌 로맨티시즘의 힘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편으로 이런 질문은 해볼 법하다. 드라마에서 로맨스가 넘쳐나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이성사회성(heterosociality)에 대한 상상력이 부족해서인 것은 아닐까?
이성사회성은 20세기에 접어들며 여성들도 공적인 영역으로 진출하면서 나타난 개념이다. 가정의 영역에 묶여 있던 여성에게는 배필을 찾아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과 같은 이성애 구조의 재생산에 대한 책임만이 부여되어 있었다. 그러니 한 여성의 인생에서 남성과 맺을 수 있는 핵심적 관계는 이성애 관계였을 테다. 그러나 여성이 ‘남성의 일’이라고 불리던 사회경제활동 영역에 ‘개인’의 자격으로 참여하게 되면서는 이성 간의 교호관계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공적 영역은 더이상 남성들의 동성사회성(homosociality)의 공간만은 아니며, 남녀가 동등한 동료 관계가 될 수 있는 이성사회성이 성장하게 된 것이다.
남녀칠세부동석은 케케묵은 것이 되었더라도 여전히 사춘기 소녀들이 ‘남자 애들 조심해라’라는 가정교육을 받는 우리 사회에서 이성사회성은 과연 어느 정도의 현실성을 가질까? 또래 이성끼리의 친밀성이 금새 ‘얼레리 꼴레리’의 대상이 되는 사회에서 이성 관계는 곧잘 이성애 관계로 환원된다. 그러니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송화가 네 명의 남성 친구들과 맺는 관계는 판타지적이거나 ‘남편 찾기’ 서사의 초읽기로 여겨진다. 더 일찍이 같은 제작진이 연출한 <응답하라> 시리즈는 ‘남자 사람 친구/오빠’ 판타지 장르가 아니었던가. 어린 시절 함께 발가벗고 뛰놀던 이성 친구 간의 동등한 관계는 어른의 신체를 갖게 됨에 따라 기울어진다. 여성이 남성의 보호 속에 놓이는 순간 서사는 자연스레 이성애 로맨스의 구도를 취한다(밤늦게 귀가하는 시원을 향해 맨발로 달려가는 윤제, 만원 버스에서 덕선을 지켜주는 정환의 팔뚝).
반면 드라마 속에서 이성애 관계에 포섭되어 있지 않은 여성은 규범적인 여성성 수행 각본에서 이탈해 있는 여성들이다. 톰보이 캐릭터든 복수에 불타는 여전사 캐릭터든 ‘남성적 행동력’을 갖고 있다고 평가되는 여성들만이 남성과 안정된 이성사회성의 관계를 맺는다. 톰보이가 원피스를 입도록, 여전사가 온순한 미소를 짓도록 길들이는 과정이 곧 로맨스다. 드라마 속 여성에게 이성사회성과 이성애는 양립가능하지 않다. 이성애적 매력이 부족하고, 술을 즐기고, 입이 거칠고, 덜렁대는 것으로 전형화된 여성만이 이성사회적 관계 속에서 그려질 때, 그것을 이성사회성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저 남성 동성사회성의 변주 아닐까?
나는 전통적인 여성성이라도 이성애의 대상으로만 환원되지 않고, 다양한 여성성이 이성사회적 맥락에서 소통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예를 들어, (스포주의) <멜로가 체질>에서 주인공 진주(천우희 분)가 범수(안재홍 분)와 로맨스 관계를 전개하는 동안, 나는 그의 친구 한주(한지은 분)가 또 다른 주조연급 남성인 직장 후배 재훈(공명 분)과 연애 감정에 빠지는 향단이가 되리라 예측했다. 특히 한주는 싱글맘이기 때문에, 이성애 연애 시장에서 외면 받던 여성이 연하남의 애정공세를 받는 그런 익숙한 낭만적 사랑의 서사가 되리라 짐작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주는 재훈에게 인생선배로서의 역할에 충실한 후 결말에서 급작스레 어떤 남성과 연애를 시작한다. 이로써 드라마는 한주의 서사를 그녀가 이혼한 남편, 남성 후배, 남성 연인 모두와 각각의 방식으로 친밀성 관계를 맺는 모습으로 끝맺어준다. (물론 결말 이후의 세계에서 한주의 새 남자친구가 한주의 전 남편이나 재훈을 문제 삼으며 한주가 자신과의 이성애 관계에만 충실하도록 요구하는 클리셰가 반복되었을지는 모를 일이지만.)
남성에게 사랑받기 위해 특정한 여성성에 자신을 가둘 필요가 없듯, 남성과 사회적으로 친밀하고 동등한 우정을 유지하기 위해 남성성 또는 비여성성을 수행할 필요가 없어야 한다. 우리는 숱한 연애 담론을 통해서 어떻게 건강한 이성애 관계를 맺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고민하지만, 이성사회적 관계에 대해서는 오로지 이것이 이성애 관계에 방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는 방법에 대해서만 고민한다. 이성 관계에서 이성애가 기본값으로 주어진 분위기 속에서, ‘여자 사람 친구’, ‘남자 사람 친구’와 같은 단어는 여전히 이성애적 긴장감을 갖는다. 어쩌면 ‘여자/남자 사람 친구’란 결혼의 전단계로서 연애라는 관계가 생겨나고 또 그 전단계로서 썸이 생겨난 것처럼 썸의 예비 단계일 뿐인지도 모른다. 우리에게는 이성애적 긴장감 또는 대상화로부터 자유로운 산뜻한 이성사회성의 서사가 좀 더 필요하다. 송화는 특별히 이성애적 매력이 부각/탈각되거나 여성성이 특정한 방향으로 정형화되지 않은 산뜻한 캐릭터다. 앞으로 7화나 남아있으면서 시즌제로 지속될 예정이라는 이 드라마가 네 남성 중 누가 송화의 미래 남편일지 예측하는 게임으로 흘러가지 않기만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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