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정] 논문을 씁니다. 그런데..



처음 내 이름이 담긴 논문이 게재가 되었을 때 직장에 다니는 한 친구가 학술DB에서 내 논문을 검색하여 캡처한 사진을 보내왔다. 논문에는 6,000원이라는 가격이 책정되어 있었고 친구는 “이거 사면 너한테 얼마가 가?”라고 물었다. 또 다른 친구는 이미 결제창까지 도달한 상태에서 같은 물음을 보내왔다. 그렇게 친구들을 만류하며 논문 파일을 공유해주었다. 논문 주제와 관련 없는 분야에서 일하는 친구들이 내 논문을 읽고 싶었을 리가 만무하다. 일종의 마수걸이를 한다는 의미에서 나의 첫 출발에 대한 격려를 마음과 더불어 소액으로나마 전하고 싶었던 것이다.


학자들은 논문을 써서 돈을 벌지 않는다는 사실을 학계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안다. 내 이름이 들어간 첫 논문을 쓸 당시에도 논문에 사용한 이론적 개념은 다 이해하지 못했어도 이 논문이 내게 금전적 보상을 해주지는 않는다는 것은 당연하게 알고 있었다. 내겐 당연한 이 사실이 외부인에게는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그 친구들의 물음을 통해 알았다. 한 친구는 학생을 가르치면서 교육서비스를 생산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받는다. 다른 친구는 대기업에서 상품 기획을 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받는다. 친구들의 눈에 나는 학생 신분이긴 해도 지식을 생산하는 사람이었고 논문이라는 형태로 지식이 생산되었으니 응당 그에 대한 금전적 대가를 받으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배움이라는 경건하고 고고한 길에 오른 나는 지식이란 팔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뭔가 더 그럴듯한 무형의 가치를 지닌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로부터 약 5년이 지나 학생 신분을 벗고 ‘연구원’이라는, 직함은 그럴듯하지만 사실 여전히 구직시장에 내던져져 있는 계약직 신분이 된 나는 그것이 얼마나 순진한 생각이었는지를 깨닫는다. 그 ‘배움이라는 경건하고 고고한 길’에도 신자유주의적 경쟁 체제라고 불리는 것이 존재하기에 학생은 글월만 읊어서는 안 되었다. 연구재단에서 장학금 수혜를 받던 시기에 연차평가 면접에서 나는 ‘다른 학생들보다 논문 실적이 저조하다’라는 평가를 받았다. 수혜 기간이 시작된 후 다수의 국내외 학회 발표를 했고, 한권의 책과 두 편의 KCI 논문을 출판한 시점이었다. 장학금이 진짜 말그대로 학업장려금을 의미하는 줄 알았고 연차평가란 나의 연구 능력이 어떻게 성장하고 있는지 성실히 보고하면 되는 것이리라 생각했던 내게 그 능력을 논문 형태로 더 내지 않으면 장학금 수여가 취소될 수도 있다는 무언의 명령이 내려진 셈이었다. 지식 교류의 장이라는 학회 참여도 실적이 아닐 수 있고, 국내 지식공동체에의 기여라고 생각했던 역서 작업도 실적이 아닐 수 있음을, 이후에도 꾸준히 이어진 실망의 순간들을 통해 알게 되었다. 지식이 지닌 ‘그럴듯한 무형의 가치’란 정말로 그럴 듯 하기만 할 뿐이다. 지식 생산으로 먹고 살아야 하는 이에게 지식은 연구재단이나 학교가 인정하는 유형의 형태로 생산되어야 하고 그것은 곧 논문이다. 그리고 가능한 한 많은 논문을 써야 하다.


논문 생산을 압박하는 이 구조 속에서도 논문을 써서 돈을 벌 수 없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럼 논문을 쓰면 무엇을 얻는가? 1) 연구자로서 개인적인 보람을 얻는다. 사실이지만 충분한 말은 아니다. 신자유주의적 시장이 된 학계에서 논문 생산의 대가로 주어진 보람이란 ‘열정페이’나 마찬가지다. 2) 세상에 쬐끔이라도 보탬이 되는 지식을 생산해 인정 및 명예를 얻는다. 이것은 내가 쓴 논문이 사회에 충분히 도달했을 때에나 가능한 일이다. 아무리 엄청스레 대단한 지식을 담은 논문을 생산했더라도 아무도 읽지 않는다면 그것은 사회적 가치를 갖지 못한다. 더욱이 논문이 소수 학술DB의 독점하에 유료로 유통되는 상황에서 그 지식은 대부분 ‘기관구독’ 혜택을 보는 소수 영역으로 제한된다. 트렌드에 부합하는 키워드를 지닌 지식, 대중매체나 지식인 셀러브리티를 통해 매개된 지식, 포퓰리즘적 지식은 명예를 가져다 줄 수 있어도, 개개인이 공들여 공부하고 연구하여 쓴 모든 논문이 사회와 대중에게 도달하는 것은 아니다. 3) 안정된 직장을 얻는다. 그나마 합리적이고 욕망될 만한 교환 가치이며, 사실 많은 불안정한 위치의 연구자들이 이 대가를 기대할 것이다. 그러나 ‘최근 3년간 실적’ 요건을 n년간 아등바등 유지해 온 수십 수백명의 비정규직 학자들이 소수의 빈 자리를 향해 달려드는 모습에서 논문의 적절한 대가를 발견할 수 있을까. 내게 학위논문을 단행본으로 내기를 권하거나 번역 작업을 해볼 것을 권하는 교수님들은 하나같이 어딘가 미안한 표정이었다. 논문이 아닌 형태의 지식 생산이 사회와 학계에는 어떤 보탬이 될지 몰라도 젊은 연구자가 안정된 직장을 얻는 데에는 별 보탬이 되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다.


연구자로서 논문을 쓰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일이고 의미 있는 일이다. 게다가 때로는 재미있기까지 하다. 그러나 논문의 저작권을 학회에 양도하고, 소액의 심사비와 소액이 아닌 게재비를 납부하고, 그 논문이 ‘구매가능’ 마크를 단 채 학술DB에서 값을 올리는 동안(도입부에 언급한 나의 첫 논문은 현재 가격이 9,000원으로 올랐다), 연구자는 돈과 정규직을 얻지는 못하고 일시적인 보람과 운이 좋으면 조그마한 명예를 얻는 과정은 별로 재미있지 않다. 깊이 있는 연구보다는 많은 연구를 해서 논문 편수로 연구 역량을 증명해야 하는 구조 속에서 나는 내가 사랑하는 연구와 글쓰기, 동료들과의 대화를 우선순위에서 자꾸만 미루게 된다. 건강한 연구 생태계 또는 연구 시장이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도 남의 일로 미루어 둔다. 사회 전체적으로 그 어느때보다 갑갑한 분위기의 연말을 맞고 있는 가운데 나는 또 다른 갑갑함을 느끼며 올해는 몇 개의 실적이 나왔고, 내년에는 몇 개가 나올 수 있을지를 셈해본다.


그래도 일단은 모두들 메리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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