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정] ‘남편 있는 여자’와 ‘맘충’


<82년생 김지영>의 관객수가 300만을 넘어선 이 시점에 이 영화를 본격 리뷰하면 매우 시의적절하겠지만 오래 전 개봉한 다른 영화 이야기로 잠시 우회하려 한다. <82년생 김지영>을 보며 시대도, 장르도, 서사의 톤도 완전히 다른 한 영화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무려 24년 전에 개봉한 <개같은 날의 오후>는 최근의 ‘페미니즘 리부트’ 속에서 페미니즘을 접하는 젊은 세대에게 페미니즘의 흐름이 정말로 ‘re’boot임을 확인시켜주는 영화다. 올해 9월에 열린 제21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도 한국영화계에서 페미니즘이 본격적으로 태동하던 1990년대의 주요한 영화로 이 영화를 소개하며 상영하기도 했다.


유튜브에도 저화질로나마 업로드되어 있으니 모두들 한번 보시라 권하고 싶지만, 바쁜 이들을 위하여 줄거리를 소개하면 대략 이렇다. 찜통 더위 속에서 한 아파트 단지의 변압기가 터지고, 에어컨도 선풍기도 돌리지 못하는 주민들은 모두 아파트 광장으로 나와 모여 앉아 있다. 그런데 마침 남편의 상습적인 폭행에 시달려오던 정희(하유미 분)가 남편으로부터 도망쳐 광장으로 나오게 되고 광장에서도 폭행이 이어지자 여자 주민들은 말리기 위해 각자의 남편부터 소환해본다. 그러나 남편들은 “왜 저 여편네가 남의 일에 괜히 간섭을 해?!”라며 시큰둥하게 대꾸할 뿐이다. 여자들은 더 지켜보지 못하고 직접 달려들어 정희의 남편을 응징하는데, 결국 정희의 남편은 죽게 된다. 뒤늦게 도착한 경찰이 여자 주민들을 살인범으로 연행하려 하자 여자들은 모두 옥상으로 도피한다. 그야말로 개 같은 날의 오후다. 이렇게 어쩌다 보니 옥상 점거 농성을 하게 된 여자들은 경찰과 남편을 포함한 남성들과 대치하며 연대해 나간다. 가부장제의 희생자로 스스로를 위치 지은 옥상의 여성들 사이에서도 기혼 여성과 미혼 여성, 고상한 부녀회장과 호스티스, 트랜스여성 등 서로 다른 정체성 간의 대립이 생겨나기도 한다. 하지만 여자들은 내부적으로는 자신들의 목소리가 본질적으로 소외된 자들을 포용하는 것이라는 데에 합의를 보고, 외부적으로는 아파트 내의 다른 여성들과 뉴스를 보고 달려온 다른 수많은 여성들의 지지를 받으며 여권의 신장을 외친다.


다양한 여성주의적 의제들이 등장인물들의 대사를 통해 다소 촌스러울 정도로 직접적으로 제기되는 가운데, 그 저변을 은밀히 관통하는 하나의 문제적 기표가 있다. 바로 ‘남편 있는 여자’이다. 영화 전반부에 정희에게 폭력을 가하던 정희 남편은 자신을 말리려는 석이 엄마(황미선 분)를 윽박지르고, 석이 엄마는 “왜 나한테까지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거예요? 나도 남편 있어요!”라고 큰소리친다. (그 남편이란 석이 엄마를 전혀 편들어주지 않는다.) 한편 독신 여성으로서 아파트 내에서 미움과 눈총을 받아온 기순(이진선 분)은 같은 동의 영희 아빠와 불륜 관계에 있는데, 마침 도망친 옥상에서 영희 엄마(송옥숙 분)와 조우하게 된다. 틈만 나면 자신을 향해 으르렁거리는 영희 엄마에게 기순은 독신 여성의 설움을 토하며 “당신이야 바람난 서방이라도 있잖아!”라고 외친다. 어느 남편의 구타에 대응하다 옥상으로 내몰린, 하나같이 가부장적으로 균질화된 남편을 둔 이 여성들에게도 남편이란 없는 것보다 있는 게 나은 존재다.


남편 있는 여자가 남편 없는 여자보다 우월하다는 것은 여성에게 남편이 하나의 권력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전혀 낯선 이야기가 아니다. 근대적 성별 분업 체계 속에서 남성이 생계부양자로 위치지어지는 동안 가사노동을 전담하게 된 여성은 자연스레 경제활동인구에서 제외되며 부양을 받아야 하는 존재가 되었다. 아버지에서 아들로 이어지는 남계혈통을 제도적으로 승인하는 호주제와 여성의 임금차별 및 경력 단절을 불러오는 경제구조는 여성을 더더욱 누군가의 부양이 필요한 존재로 만든다. 남성중심적인 가(家) 개념이 제도화 및 관념화된 이 사회에서, 적정 연령에 결혼하여 이성애 정상가족을 꾸려 누군가의 아내 지위를 갖는 데 성공하지 못한 여성은 약자이고 소수자이고 타자의 자리에 내몰린다. 더불어 얼핏 권력인 듯한 ‘남편 있는 여자’도 홀로서기를 박탈당한 위치일 뿐이다. 여기까지, 95년도 개봉 영화를 보고 한 이야기다. 여성의 경제활동이 증가하고 비혼주의가 담론화되며 페미니즘의 리부트가 일어나는 오늘날에 ‘남편 있는 여자’란 어떤 의미일까?


1995년의 ‘남편 있는 여자’는 2019년에 ‘맘충’이라는 밈으로 이어진다. 원래는 아이를 빌미로 민폐를 끼치는 일부 집단을 폄하하는 말로 등장한 맘충은 언제부터인가 육아하는 기혼 여성 자체를 싸잡는 혐오표현으로도 야금야금 사용되고 있다. <82년생 김지영>의 지영(정유미 분)은 그저 평일에 유모차를 끌고 공원에 앉아있다는 이유만으로 ‘남편이 벌어오는 돈으로 편히 사는 맘충’ 취급을 받는다. 지영에게도 경제활동을 할 능력이 (심지어 운 좋게 기회마저!) 있지만 그것이 남편의 임금 수준에 미치지 못하며 남편의 커리어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다시 가정의 자리에 도로 끌어 앉혀진다. 누군가의 시선 속에서는 ‘남편 있는 여자’로 ‘취집’하여 사회에 민폐만 끼치는 ‘맘충’으로 해석되어버리는 그 자리에서 지영은 끝없는 벽을 마주하는 기분이라고 말한다. 사회 전반적으로 고학력 여성, 경제활동인구로서의 여성이 많아질수록 성평등에 가까워지는 것이 아니라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못하는 기혼 여성을 혐오하는 풍토가 생겨나는 상황에, 뭇 기혼 여성들의 입장에서는 차라리 ‘나 남편 있는 여자야!’라고 큰소리라도 치던 과거로 퇴보하는 편이 미움을 덜 받는 길이 아닐까.


<개 같은 날의 오후>의 남편들은 러닝셔츠 차림에 여편네 저편네, 소리를 버럭버럭 질러대며 아내의 머리채를 잡던 이들이다. 영화 속에서 명백히 악당 역을 부여받은 이 남편 캐릭터들을 보며 당시의 많은 남편 관객들은 저 골 때리는 옥상 위의 페미니즘 운동이 핍박 받는 소수의 여성들에게나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했을 지도 모르겠다. 평균치의 경험에 기반해 만들어진 소설 <82년생 김지영>이 출간되었을 때 ‘세상에 이걸 다 겪는 여자가 어딨냐’고 보편성의 잣대를 들이댄 남성 독자들처럼 말이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은 아내를 위해 기꺼이 육아휴직을 결심하는(비록 육아휴직을 간만에 자신이 ‘쉬고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일 것이라고 말하긴 하지만), 분명 평균을 웃도는 자상한 남편이 지영을 이해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을 비중 있게 그려낸다. 아무리 (지금 이 영화를 보는 남성 관객 당신 같은) 괜찮은 남편이 있어도 이 사회에서 ‘남편 있는 여자’란 ‘맘충’으로 변주되어 진화해왔을 뿐 그녀들이 마주한 끝없는 벽이 허물어지는 것은 아님을 보여주는 영리한 방식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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