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기] 흑역사는 평등할 것입니다



2010년 3월의 어느 날 얘기를 꺼내볼까 한다. 겨우 만 스물의 약관이었던 나는 그날 저녁 인생 첫 강연을 앞두고 있었다. 네 사람이 15분씩 강의한 후 질의응답을 하는 식의 미니강연이었지만, 사람들 앞에서 얘기한다는 것 자체가 익숙한 일이 아니었던 데다가, 당시 ‘고함20’이라는 조직을 대표해서 참석한다는 데 대해 부담감을 느껴서 낮부터 근처 카페에 앉아 마음을 다잡았다. 많은 일이 그렇듯 시간이 흘러준 덕분에 마무리된 일이 되었고, 결과적으로 그날 경험은 만족스러웠다. 장소를 가득 채운 청중들의 반응이 좋았고 집에 가는 길에 SNS를 통해서 즐거웠다는 인사도 많이 받아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9년이 지난 지금까지 내가 그날을 잊지 못하는 이유는, 그 경험이 점점 더 흑역사로 재해석되고 있기 때문이다. 15분 동안의 짧은 발표 내용은 지금 생각하면 참 어렸고 사려 깊지 못했다. 내가 하고 싶은 말만 생각했고, 청자를 별로 고려하지 않았다. ‘청년 문제’에 대해 말했던 내용도 지금 생각하면 너무 단순해서 자동으로 이불킥이다. 무엇보다도 ‘불안’이라는 감정 상태에 대해 떠들었던 게 좀 후회된다. 뭔가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 괜히 불안에 무덤덤한 사람인 척, 또 나 스스로가 주류에서 동떨어진 길을 가고 있는 사람인 척, 그렇게 얘기했던 것 같다. 활동이라는 걸 시작한 지 1년도 안 된 그때의 내가, 나보다 훨씬 많은 고민을 이미 해봤을 사람들 앞에서 이러쿵저러쿵 말했다는 생각이 이따금 떠오르면 왠지 모르게 몸까지 괴로워진다.


그러나 그럼에도 나는 나의 흑역사를 사랑하지는 못할지언정 품고는 가야겠다고 생각한다. 부끄럽다고 해서 그게 내 일이 아닌 게 되지는 않는다. 게다가 그 흑역사를 없던 일로 만들고자 하는 그 욕망은 자신에게도, 사회에게도 유해하다. 자신의 과거를 없었던 일처럼 스스로 생각하기 위해, 또 남에게 그 흑역사가 알려지는 것을 막기 위해, 거짓 상상을 보태가면서 끊임없이 자기포장을 하는 삶이 불안하고 고통스러울 것은 자명하다. 과거의 흑역사를 숨기려는 마음은 미래의 흑역사를 방지하고자 하는 마음과도 연결될 것이라서, 새로운 것들에 대해 보수적이고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쨌든 이것들은 개인의 일이고, 업보다.


허나, 나는 과거의 흑역사에 대한 집단적 망각이 존재하고 이 망각 운동으로 인해 한국이라는 나라도 집단적으로 꼬여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 의심해보게 된다. 사람들은 종종 한 번도 실수한 적 없는 사람처럼 말하고 행동하고 평가한다. 후배들에 대해서는 특히 더 심하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 한다’는 속담은 이런 현실에서, 사람을 성장시키기보다는 이미 성장한 사람만을 사람 대우하고 그렇지 못하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을 배제하는 방식의 조직문화로 나타나고 있다. 마치 ‘사다리 걷어차기’처럼 자신이 실패하면서, 혹은 흑역사를 만들면서 성장할 수 있었다는 것이 ‘기회’였다는 것을 망각하고, 새로운 사람들에게서 경험을 통해서 배울 기회를 앗아간다. 청년들이 능력주의에 젖어있다거나 유별나게 왜곡된 공정성 감각을 가졌다고들 하지만, 이런 면을 보면 ‘자격’을 그렇게까지 열심히 따지는 것은 사실 한국사회 전체인 것 같다.


기회의 평등이란 어쩌면 흑역사의 평등이기도 하지 않을까. 오늘날 청년정책이라는 이름으로 입안되고 있는 여러 정책은 윗세대 때와 비교해 훨씬 격화된 경쟁구조 내에서 ‘실패할 권리’까지 잃어버린 젊은이들에게, 또 세대 내의 양극화 속에서 또래들만큼 많은 것을 경험해 볼 기회를 얻지 못했던 청년들에게 ‘무엇이든 해 봐도 좋을 시간’을 제공하고자 한다. 몇 년 뒤 생각해보면 흑역사로 여겨질 수도 있을, 그러나 그조차 사실 새로운 단계로 성장할 계기가 될 누군가에게는 아주 소중한 발판일 시간을 말이다.


이러한 제도가 만들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은 정책을 통해 사람들에게 실패할 기회를 주는 일에 인색한 편인 듯하다. 조금 다른 차원이지만, 나 또한 아직 검증되지 않은 주변의 누군가에게 일을 맡기는 것을 조금 과도하게 두려워하고, ‘내가 제일 믿는’ 나에게 그 일을 배정하는 사람은 아닌지를 반성해 본다. ‘흑역사는 평등할 것입니다’를 현실로 만들기 위한 대장정에는 제도와 인식이 같이 가야 하겠지만, 이 글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나 스스로의 인식과 태도를 다잡는 정도일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스스로 다짐하겠다. 하나, 나에게 흑역사를 만들 기회가 있었음에 감사하자. 하나, 앞으로의 다른 흑역사 생성을 두려워하지 말자. 하나, 흑역사를 혼자만 만들지 말고 주변 사람들의 잠재적 흑역사에게도 기회를 주자. 하나, 흑역사가 이미 발생했다면 그걸 없던 일로 만들려고 노력하지 말자. 사과할 일이 있으면 똑바로 사과를 하자.


누군가는 말하겠지. 

ㅡ 그러면서 어느 새 당신은 흑역사를 하나 쓴 셈이로군요.

ㅡ 그렇지만 이 글도 흑역사라는 것쯤은 저도 아는데요.


사실 이 글은 ‘실패할 기회’라는 다섯 글자로 요약 가능한데 다 쓰고 보니 괜히 길어져 버린 듯. 유노윤호, 강민경, 이지혜, 채연, 그리고 나와 우리들의 흑역사, 그리고 그것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극복한 역사를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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