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기] '졸업 후 진로'와 '미래없음'에 대한 단상



대학원에도 입시철이 왔다. 대학원에 학생이 없다는 말이 무색하게, 사실 대학원생이라면 누구나 이 지원서가 탈락자의 서류로 남게 되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했던 공통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최근 주변 사람들의 입학지원서 작성 경험에 관해 들어보며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이들이 가장 작성을 어려워하는 입학지원서 항목이 개인 연구 실적 내지 CV도, 연구 및 학업계획서도 아니라, 바로 ‘졸업 후 진로’ 항목이라는 사실이었다.


생각해보면 벌써 오래 전 석사과정, 박사과정 지원서를 쓰던 나도 다르지 않았다. 입학계획서 양식에서 ‘졸업 후 진로’ 항목을 만나자 막막해졌다. 결론부터 말하면, 헛소리를 쓴 채로 지원서를 내고야 말았다. 목표를 정해놓고 조급해하기보다는 현재에 충실한 박사과정의 삶을 살고 싶다고 썼던가. 최악의 서술인 것 같지만 여하간 어려운 질문에 대해 지원자의 입장에서는 별별 생각을 다 하게 된다. ‘이걸 왜 묻는 거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지원자의 정말 졸업 후 진로 계획이 궁금해서 마련한 항목이 아니라, 이 막연하고 불안한 세상 속에서 지원자가 어떠한 목표의식과 계획적 생활을 하는 사람인지, 즉 품성을 확인하기 위해 있는 질문은 아닐까 싶은 생각을 해 보기도 했다. 아니면 대학원생의 ‘졸업 후 진로’를 생각하면 뭔가 어두운 마음이 드는데, 진짜 학문에 뜻이 있는 사람만 남기기 위해, 즉 졸업 후 진로를 생각해보다가 지원을 포기하고 다른 길로 빠지도록 하기 위한 장치일까 고민하기도 했다. 솔직하게 써야 하나, 가짜로 그럴 듯하게 써야 하나 고민하다가 솔직하게 쓴 결과가 그 모냥이었던 것이다.


입학지원서야 이제 나도 그 파일을 찾을 수 없는 아득한 흑역사로 남았을 뿐이지만, 굳이 그 막막한 느낌을 다시 떠올려 말하는 이유는, 그때 그 마음이 지금도 그다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목표를 정해놓고 조급해하기보다는 현재에 충실한 박사과정의 삶”은 자기실현적 예언이 되었다. 나는 최근 몇 년간 언제나 올해 주어진 나의 일용한 양식(연구 프로젝트)과 갑자기 제안을 받은 몇몇 학회 발표나 논문 심사와 학술행사 실무, 그 외에도 각종 다양한 일들을 해야 하는 현재에 충실해 왔다. 생각해보면 나의 ‘현재주의’는 ‘없는 미래로부터 도피하는 방편’이기도, 또 다른 한편으로는 ‘현재를 열심히 살다보면 미래에 뭐든 되어 있겠지 하는 비합리적이고 막연한 기대’이기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어쩌면 신참자에게 쉽게 사회적 성원권을 내어주지 않는 구조가 개인에게 강제하는 태도이자 통치술일지도 모른다.


박사과정에 온지 오래되었고 또 (논문을 쓰기만 한다면야) 졸업이 가까워온 시점인데, ‘졸업 후 진로’와 관련해 더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됐다기보다는 오히려 여전히 막연하기만 하다. 내가 스스로 노동시장에 관해 열심히 알아보지 않은 점도 있겠으나, 어쨌든 지난 수 년의 시간 동안 나에게 주어진 ‘취업 기회나 가능한 진로에 대한 정보’는 별달리 없었다. 학위를 받아도 변하는 게 많지 않을 것임을 되보기도 전에 나는 너무도 정확하게 알고 있다. 한국연구재단의 인문사회학술연구교수 A유형을 써보겠지만 85% 정도의 확률로 탈락하고, 박사과정 때와 마찬가지로 B유형에 다시 도전할 것이다. 박사학위가 있어도 교수가 아니고 신진연구자이기 때문에 내가 연구 아이디어를 가지고 실질적으로 책임연구자처럼 일하는 연구 프로젝트에서도 책임연구자로 이름을 올릴 수 없을 것이다. 행정안전부가 규정하는 연구자 표준임금도 아주 조금은 오르겠지만 큰 변화는 없을 테다. 아마도 나의 삶은 매해가 예측 불가능한 비-상용직의 프로젝트 베이스 라이프의 형태로 이어질 확률이 더 크다. 강의 조금, 저술 조금, 연구프로젝트 조금, 알바 조금이 모여 나의 1년을 쪼개 메꾸어 줄 것이다.


올해 초 상담에서 상담 선생님이 나에게 한 말은 나를 약간은 후벼파놓았다. “비슷한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우울감이 생길 수 있어요.” 현재에 충실한 삶, 그러다보니 매번 비슷하게, 쉴 틈 없이 바쁜 속에 무료하고 공허하게 되는 삶을 너무 오래 살아왔구나 싶었다. 아마 여전히 졸업 후 진로는 막연하고, 졸업 후에도 그 비슷한 상태는 오래 지속될 것이다.


그래서 최근 골몰하고 있는 것은 뭔가 구체적인 ‘장기 목표’를 만드는 일이다. ‘현재주의’의 삶이 너무 오래되어 ‘미래주의’로 나아가기가, 즉 머리 속에 떠오르는 ‘목표’를 글자로서 말고 진심으로 내 마음에 새기기가 쉽지는 않다. 그러나 그게 구체적으로 무엇이든지간에 꼭 가져야만 내 현재의 삶이 좀 더 의미로 충만해질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 그 목표는 아마도 ‘교수 되기’를 위해 지금부터는 ‘영어로만 논문 쓰기’와 같은 종류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사람으로 자라지도, 트레이닝받지도 않았기에.) 오히려 그 구체적인 ‘장기 목표’에도 여전히, ‘졸업 후 진로’에 무엇이라고 쓸지 모르겠어서 막막한 우리들이 함께 해야 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특별한 기준이 깃들어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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