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연에서 주최하는 문화연구포럼G. 이번 행사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세션은 신문연이 진행했던 ‘서대문N’ 사업의 후기와 고민을 나누었던 라운드테이블이었다. 우리는 ‘서대문에서 지역/문화 연구하기 워크숍’이라는 제목으로 사람들을 모았고 꽤나 많은 참여자가 반응해주어 무사히 프로그램을 마쳤다. 대다수 참여자들은 직접 연구를 배우거나 실행한 경험이 없는 초심자에 가까웠다. 여러 가지 아쉬운 점도 공유되었는데, 참여자들이 직접 지역문화를 연구하는 프로세스까지 나아가지 ‘못’했다는 사실도 꼽혔다. 그러나 8주차의 세미나 프로그램 내에서 질적연구방법과 양적연구방법 강의를 1회씩 들었다고 해서, 연구라는 형식에 뇌와 몸이 익숙치 않은 참가자들이 갑자기 자신만의 지역문화 연구를 진행하기란 역시 조금 무리가 아닌가 싶다. 석박사과정에서 수년간 수련해도 쉽지 않은 게 자기 연구를 하는 일인데, 짧은 시간의 프로그램으로 모두가 정말로 연구자가 될 수 있다고 정말로 믿는다면 대학원 과정의 의미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일 테다.
전국 각지에 청년을 지원하는 기관이 생기면서 우후죽순 생겨난 사업 중 하나가 청년이 자기 삶의 문제의식을 연구의 형태로 풀어낼 수 있도록 지원금을 주는 사업이었다. 연구는 다른 지원사업과 비교하여 정산의 벽이 상대적으로 헐렁한 편이었기 때문에, 지원을 하는 쪽에서도 받는 쪽에서도 인기가 높았다. 당시에도 비슷한 문제의식을 느낀 적이 있다. 대학원을 다니고 있는 특이한 경우가 아니라면, 대다수 청년에게는 연구자의 기술이 별로 없었으나 대부분의 지원기관에서는 모든 청년 참여자에게 완성된 한 편의 연구보고서를 일괄적으로 요구하는 불일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어떤 사업 심사에 들어가서 보면, 결국 이미 연구경력이 화려한 연구자 청년들만을 선발하는 편향이 발생하거나, 또 어떤 경우에는 청년들이 연구를 끝까지 해내지 못한다는 ‘경험치’를 이유로 사업을 삭제하거나 같은 예산을 대학 기반의 기성세대 연구자들의 청년정책 연구사업 쪽으로 변경하여 편성하는 사례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완성된 한 편의 연구를, 오롯이 1인분의 힘으로 해내는 일만이 연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생활 속에서 구체적인 문제의식을 발견해 내는 일,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과 문제의 해결방법을 고민하기 위해 대화를 나누는 일, 학계의 기준으로 보자면 연구물로 보기 어려운 형태일지 몰라도 무언가 기록을 남겨두는 일, 이 모두가 연구의 일부분이자 연구 그 자체라고 생각한다. 실제 연구에서도 이러한 작업은 중요한 중간 과정 혹은 분석의 자료로서 가치를 지닌다. 그래서 나는 예컨대 청년 농부가 자신에게 매우 이질적인 연구라는 형식에 꼭 익숙해져야만 연구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미 생활 속에서 라포가 쌓여 있는 동료들을 만나 이야기를 채록한 자료를 잘 남겨놓는 것만 하더라도, 혹은 간단한 설문조사를 실시하거나 기초적인 생각의 일지를 남겨놓는 일만 하더라도 충분히 귀중한 연구자료로서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꼭 연구배경부터 선행문헌 검토, 연구방법, 자료 분석과 해석, 연구결과에 정책 제언까지 들어간 그런 연구보고서를 내놓지 않더라도 말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청년센터의 사업 자문 과정에서 나눈 일도 있었지만, 좀처럼 연구지원 사업에 반영되는 일은 없었다.)
좀 더 완성된 연구물을 만들어야 한다면, 그 과정을 모두 각자의 책임으로 남겨둘 것이 아니라 선행연구 검토나 연구 전반을 체계적으로 설계하고 수행하는 과정에 상대적으로 연구에 익숙한 인문사회 연구자들이 결합하는 방식을 상상하는 것은 어떨까. 그것이야말로 대학원 과정을 통해 일종의 전문지식을 익힌 연구자들이 전문성을 발휘함으로써 사회에 기여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경우, 연구에 꼭 필요한 원천적인 문제의식을 제공했다는 이유로, 또는 해당 연구에 핵심적인 중요한 정보를 제공했다는 이유로, 이를테면 직접 글쓰는 작업에 참여하지 않았더라도 저자의 지위를 부여하는 것, 그래서 이 연구가 연구 자체를 어떻게 하는지에 대한 지식을 가진 연구자와, 삶의 문제의식을 제공한 (비)연구자―‘비’에 괄호를 친 것은 결국 그 문제의식 자체가 연구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하기 위해서이다―의 협업으로 이루어졌음을 내보이는 것이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마치 이공계에서는 실험 기계만 빌려줘도 저자에 이름을 올릴 수 있듯이.)
이러한 상상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비)연구자들의 연구사업을 기획하는 실무자들의 변화도 필요하지만, 연구자들의 태도 전환이 더욱 중요할 것으로 생각한다. 사실 이렇게 ‘남’의 문제의식을 해결하기 위한 협업은 ‘연구용역’의 형태로 이미 벌어지고 있는 일이기도 하다. 다만 나를 포함한 많은 연구자들은 그러한 작업을 할 때 ‘내 연구’를 할 시간에 돈을 벌기 위해 ‘덜 의미 있는 노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게 통상적이기도 하다. 이렇게 어떤 경우, 특히 인문사회 연구자들은 ‘내 문제의식’이라는 것, ‘온전한 나의 연구’라는 이상에 매몰되기도 한다. 물론 그렇게 오롯이 혼자서 연구해내는 능력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가진 기술을 ‘남’ 혹은 ‘우리’의 문제의식을 해결하는 작업에 내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또한 중요한 일이며, 즐거운 일이라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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