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기] 이 국면에 말 얹기 싫었는데 – 조국 사태와 ‘청년’



‘조국 사태’ 국면은 한국사회가 얼마나 다양한 목소리들로 이루어져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조국 장관 자녀의 논문 제1저자 논란, 입학 부정 논란 등으로 대학에서 촛불을 든 몇몇 젊은 층, 검찰개혁과 국회개혁을 외치며 서초동과 여의도에 모였던 사람들, 광화문에서 ‘정권 퇴진’을 외치고 있는 사람들, 그 어느 쪽에도 소속감과 동질감을 느끼지 못하며 기성정치에 대한 냉소감을 표출하는 사람들은 모두 다수가 2016년 말에서 2017년 초 이번 정권의 탄생으로 연결된 ‘촛불’을 함께 들었던 전력이 있다. 물론 3년 전 당시에도 이미 그 촛불의 주체가 특정한 단일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유사성에 바탕을 둔 집합이라기보다는, 사실상 개인들의 특이성을 유지한 채로 그것을 정동적으로 표출하고 있는 일종의 다중(multitude)이나 이질적인 정치적 주체들의 일시적인 연합에 가깝다는 지적이 이미 이루어진 바 있(으나 무시되었)다.


최근의 국면에서는 누군가가 광화문에 있느냐, 서초동에 있느냐에 따라서 한국사회가 두 개의 세계로 분열되었다는 점이 가장 주목받고 있으나 이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우선 최근 광화문과 서초동에 등장하는 주체들은 스스로 거기에 참여하고 있으나, 해당 정치 공간 내의 ‘주류’ 의견과 자신의 참여 동기 사이의 격차를 강조하는 발화를 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2016년의 촛불과 마찬가지로 2019년의 ‘분화된’ 촛불들도 동질적인 하나의 목소리가 아니라 그 자체로 다성적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더욱 중요한 지점은 여기에 있는데, ‘서초동과 광화문 사이’의 정치적 공간의 크기가 생각보다 어마어마하다. 최근 드러난 사실은 새누리당-자유한국당에 대해 큰 거부감을 가지고 있기에 ‘광화문’에 반감이 있지만, 동시에 이번 정권의 여러 가지 행보에 대해서도 커다란 실망감을 안고 있어서 ‘서초동’에도 나가기 꺼려지는 무당층 내지는 정치적으로 적절히 대표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의 비율이 생각보다 훨씬 ‘다수’라는 사실이다. 선거 때만 되면 기호 1, 2번 주요 후보를 위주로 보도되고 나머지 정당 후보나 무소속을 ‘소수 후보’로 묶어 보도하는 것이 오히려 거대 양당 체제의 재생산에 기여하게 되는 것처럼, 현재 ‘스펙타클’하게 드러나는 두 세력의 외화된 목소리만이 다수성을 가진 것으로 전제하는 관성 역시 제도 정치나 주류 담론이 적절히 대의하지 못하고 있는 시민들의 존재를 상징적으로 더욱 절멸시킬 수 있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조국 사태’의 흐름에 따라서 ‘청년’이 어떻게 ‘팔이’되었는지 이슈의 흐름을 보면, 대강 초기에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등의 ‘명문대’ 일부 학생들이 조국 퇴진 시위를 한 것이 과잉 이슈화되다가 후기로 갈수록 청년이라는 이슈가 아예 사라졌다는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이 두 국면을 각각 나누어 이야기들을 보태보고자 한다. 우선 초기 조국 전 장관 자녀와 관련된 논란이 일었을 때 ‘청년’은 적극적으로 소비되었는데, 사실 ‘공정성’을 이슈로 두고 ‘분노’한 것이 20~30대 청년들에게만 한정되는 게 아니었음에도 ― 최근에는 사실 오히려 현 정권의 적극적인 지지층이었던 30~40대의 지지 이탈이 가장 극심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 20대를 ‘공정성 세대’라고 세대주의적으로 이름 붙였던 그 게으른 관성을 바탕으로 매체들의 ‘청년팔이’가 지속된 것이다. 심지어 이 당시 대학생들의 시위는 대학생 내에서 매우 일부 학생들에 의해서 주도된 것이고, 오히려 다수의 대학생은 장관 임명에 거부감을 가지고는 있으나 그 집회에 대해서도 꺼림칙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젊은층 전체의 의견을 대표할 수 있는 정치적 집회인 것처럼 논의되었다. 매번 ‘SKY 대학생’들만 주목하고 있으면서 그걸 청년세대의 의견인 양 과잉대표하는, 언론의 고질적인 버릇이 반복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후 ‘청년’ 이슈는 실종되었다. 이는 정국에서 ‘검찰개혁’ 등으로 중심의제가 다소 넘어가고, 또한 ‘서초동’ 대 ‘광화문’의 집회 스펙터클 경쟁으로 국면이 변화되면서 일정하게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것이기도 하지만, 사실 특히 ‘진보’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조국 사태’ 초기를 거치면서 청년층을 자신들의 편이 아닌 것으로 인식하게 되면서 좀 더 가속화된 면도 있다고 할 수 있다. 조국 장관 퇴진 시위를 했던 대학생들이 매우 소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이 보도되고 비판 대상에 오르는 일이 반복되었다. 대학생 전체, 심지어는 청년 전체가 가진 정치적 성향이 의문에 부쳐지면서 몇몇 사람들로부터 동료 시민의 자격을 상실하기도 했다. 20대는 이미 ‘보수화’되었기 때문에, 우리 편이 될 수 없다는 식으로 말이다.


20대 보수화론은 ‘20대’를 자신과는 다른 타자, 나아가서는 ‘괴물’로 경험하는 사람들의 가장 초라한 언어다. ‘나와 다름’으로부터 느끼는 당혹감을 해소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바로 내 기준을 옳음의 위치에 두고 타인을 ‘틀림’의 영역으로 밀어 넣어 버리는 것이고 20대 보수화론은 일정 부분 그러한 혐의를 지닌다. 스스로를 ‘진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내놓는 ‘20대 남성’, ‘청년’ 혹은 ‘세상 사람들’에 대한 ‘보수화’론은 주로 ‘보수’ 자체가 도덕적으로 나쁜 것 혹은 떳떳하지 못하거나 세상에 해로운 것임을 가정하는 태도를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주로 ‘보수’가 된 저편 사람들은 협력할 수 있는 파트너보다는 해결하고 극복해야 할 문제 대상으로 빠르게 위치 지어지곤 한다. ‘20대’를 ‘괴물’로 상정하면서 동료 시민의 자리에서 밀어내는 기성정치 주체들의 태도는 타자에 대한 ‘겁(공포)’이자 자신들의 책임을 방기하면서 적당한 알리바이를 만드는 ‘비겁’이다.

그러나 앞서 논의했듯이 최근 ‘서초동과 광화문 사이’에서 대의되지 못하고 있는 청년들은 ‘진보’가 함께 할 수 없는 편에 있는 ‘보수’가 아니다. 오히려 스스로에게 적절한 정치적 효능감을 안겨줄 수 있는 정치 세력의 등장을 필요로 하는, 현재 대의 체계 바깥에 있는 존재라 보아야 더욱 타당할 것이다. 그러므로 현재 제도 정치에서도 주류 담론에서도, 또 ‘청년’이라는 말로 ‘팔이’되지조차 못하고 있는 수많은 젊은 시민들의 열망을 언어화하고 정치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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