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기] 연구방법을 결정하려니 떠오르는 생각들

7월 30일 업데이트됨



박사학위논문을 본격적으로 준비하기 시작했다. 논문심사의 첫 단계인 프로포절(연구계획 발표) 날짜가 다가오고, 뇌피셜로만 둥둥 떠다니던 추상적인 아이디어들을 정제된 형태로 정리하는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연구설계는 크게 두 가지만 잘 하면 대강은 정리가 된 것이라 할 수 있을 텐데, 다른 게 아니고 연구문제를 명확히 정하고 그 문제를 어떻게 연구할지 연구방법을 결정하는 일이다. 보통 연구문제를 도출하기까지의 문헌연구 과정을 잘 정리해서 논문의 2장으로 만들고, 연구문제를 포함한 연구방법에 관한 논의를 논문의 3장으로 만든다.

현재 내 상황을 자가진단해보자면, 무엇을 하려는지는 상대적으로 명확한 편인데, 그걸 어떤 방법으로 연구해야 하는지에 대한 정리가 덜 되어 있는 편이다. 그런데 이게 꼭 이번 연구에서만 새롭게 겪게 된 어려움이 아니라는, 그리고 단순히 개인적인 능력 부족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학계의 연구문화가 연구자 개개인에게 연구방법과 관련한 곤란함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원론적으로 방법론 수업에서는 ‘표준적인 연구방법’은 없으며, 각자의 연구문제에 맞는 연구방법을 찾고, 선택하고,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들 배운다. 연구는 정해진 매뉴얼을 step by step으로 따라함으로써 '제대로' 할 수 있는 종류의 활동이 아니다. 연구에 있어서 방법이라는 것은 설정한 연구문제에 따라, 또 연구 과정에서 연구자의 문제의식이 변화함에 따라, 또 그렇게 해서 바뀌는 연구문제에 따라 계속해서 조정되는 것이고, 매순간 연구자가 직관적이고 가끔은 창조적으로 선택해야 하는 문제다. 따라서 N개의 연구가 있으면 N개의 연구방법이 존재한다.

대학원에서 혹은 방법론 수업에서 전수되어야 할 것은 단순히 담론분석은 무엇인가, 심층인터뷰란 무엇인가와 같은 특정한 '표준화된 연구방법'이라기보다는 결국 연구자 개인이 연구를 진행할 때 자신의 연구에 적합한 방법을 찾기 위해 기존의 사례들을 탐색할 수 있도록 하는, 또 일정하게 방법을 선택하고 창조할 수 있도록 하는 추상적인 능력이다. (그래서 이 능력은 '방법'보다는 '방법론'과 또 '방법'에 대한 이론적 지식보다는 체험적 지식과 더 연결되어 있다.) 물론 대부분의 연구방법 수업이 '표준화된 연구방법'의 목록을 나열하는 식으로 커리큘럼이 짜여 있지만, 이건 페다고지상의 이유로만 제한해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실제 연구 절차, 특히 논문 심사과정을 거치면서 연구방법에 대한 담론은 창조적으로 뻗어 나가기보다는 자꾸 비슷한 레퍼런스로 비슷한 이야기를 관성적으로 반복하는 식이 되어버리고 마는 듯하다. 연구방법은 보통 참여관찰, 심층인터뷰나 FGI, 담론분석, 온라인분석과 같은 너무 큰 범주들 내에서만 연구주제와 매칭되고, 그 정도 말로는 실제로 그 연구가 어떻게 진행될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확인하기 어렵다. 연구방법에 대해 자세히 서술하라는 심사위원 의견이 있을 경우 보통 그 연구방법과 관련한 ‘외국 저자’의 고전들, 이를테면 담론분석의 경우 푸코, 페어클라우, 밀즈, 맥도넬 등을 레퍼런스 삼아 ‘내 연구에 대한 이야기’ 대신 ‘담론분석에 대한 이야기’를 적어 보완하는 길이 좀 더 표준적이다. 질적 연구자들은 서로의 요즘 연구관심사에 관한 대화를 나눌 때 연구의 소재에 집중하여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고, 연구방법에 대해서는 덜 이야기한다. 사실 좀 더 구체적이고 세분화된 연구방법 범주에 대한 체계 자체를 실제로 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다. 양방(양적연구방법론) 수업에서는 방법론(methodology) 없는 방법(method)만 가르치는 경우가 많고, 질방(질적연구방법론) 수업에서는 방법 없는 방법론만 배운다는 적절한 ‘우스갯소리’도 들린다.

최근 문헌연구 과정에서 ‘질적 미디어 분석(QMA: Qualitative Media Analysis)’이라는 연구방법을 접한 경험은 인상적이었다. 사실 QMA에 대해서 이전에 들어본 적은 없었지만, 사실 좀 구체적인 내용을 따져 보면 QMA라는 이름 없이도 이미 내가 수행했던 이전의 연구들과 상당히 유사한 방법으로 볼 수도 있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어떻게 보기에는 정말 한계적(marginal)이기만 한 차이를 강조하면서, 담론분석이나 내용분석과는 별개의 QMA라는 연구방법 범주/명칭을 설정하고, 그것에 대한 단행본이나 연구를 만들고, QMA를 적용시킨 경험연구를 생산하는 연구실천이라고 볼 수도 있을 테다. 어떻게 보면 ‘굳이 이렇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역으로 이렇게 연구방법에 대한 담론을 어떻게든 만드는 실천이 있으면 방법 자체에 대한 논의의 활성화도 가능해지고, 또 이러한 과정을 통해 한국에서는 여전히 자체생산하기보다는 계속해서 수입해서 사용하는 연구방법들도 체계화될 수 있었던 것이리라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학계에서 하나의 작업을 한다는 것은, 내가 쓴 것이 지금부터 진리라고 선언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연구결과물에 대한 기록을 두고 비판과 갱신과 활용이 이루어지면서 지식이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데 의의가 있는 만큼, 좀 모자라 보이는 연구방법이라도 좀 더 투명하게 공개하고 체계화하려는 노력이 집단적으로 이루어지는 건 긍정적인 효과가 클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덧붙이고 싶은 것은, 질적 연구자들이 방법론에 대한 지식으로서는 ‘양-질 구분을 다시 생각’(이기홍)하게 되기는 했지만, 이미 정해져 있는 양방-질방의 구분선을 스스로 횡단하여 더욱 풍부한 질적 연구를 위해 양적 방법을 동원하는 실천으로까지 나아가기가 참 쉽지 않은 듯하다는 인상이다. 제도적인 원인으로 인한 경로의존성이 가장 큰 이유가 되겠지만, 석사 입학 이후 7년 반이 지난 지금까지 나 스스로도 질적 연구자라는 이름 아래에 내 한계를 이미 정해놓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그리고 제도적으로 그러한 경험을 제도권 페다고지 내에서 공급받지 못했다고 해서 이미 수학, 통계학, 컴퓨터 정보처리 등을 포함하는 새로운 방법을 배울 수 없는 사람이 된 것처럼 혼자 알아서 빨리 노화해버렸던 것은 아닌지 하는 반성을 요새 하게 됐다. 내가 알고 싶은 질적인 연구문제에 대한 연구방법을 생각하다보니, 물론 자료 수집 과정에서 참여관찰과 심층인터뷰와 같은, 내게 익숙한 질적 방법이 여전히 요긴하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동시에 네트워크 이론이나 데이터 마이닝, 통계적 방법 등을 알면 더 좋은 연구를 할 수 있는 게 너무나도 ‘팩트’ 아닌가 하는 생각을 프로포절을 2주일 앞두고서야 반복적으로 하게 된다.

나의 연구는 어디로 흘러가게 될까, 의 문제는 결국 내가 증명해내야 할 문제이지만, 이와 별개로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해봤을 질적 연구자들이 많이 있다면, (물론 훌륭한 통계 연구자, 데이터 전문가를 친구로 두는 것도 한 방법이겠지만) 장기간에 걸쳐 질적 연구에서의 연구방법에 관한 담론을 더 활성화할 방안을 함께 이야기해봐도 좋을 것 같다. (신문연에서 맨날 하는 말인 동료 구하는 소리로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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