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문NX신문연] 우리에게 지역이란 무엇인가

최종 수정일: 2월 18일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이준형


어느날 서대문구 연희동에 자리한 무소속연구소의 연락을 받았다. 자신들이 수행하고 있는 서대문구 지역문화 사업에 신문연이 참여해줄 수 있겠느냐는 제안이었다. 그러나 지역문화나 문화 정책에 대한 이해도가 높지 않았던 터라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다. 스스로 문화라는 주제로 연구 수행하고 있다고 정체화하면서도 문화 정책과 시민 등 행위자들이 교차하고 있는 현장 앞에서 당췌 무슨 역할을 해야하는가도 떠오르지 않아 내심 부끄럽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욕심이 났다. ‘신촌'이라는 이름을 쓰면서도 사실 신촌과 서대문에 대해 잘 몰랐던 우리가, 딛고 서있는 공간에 대한 이해와 외연을 확장할 수 있는 기회라고 여겼다. 제안을 수락하며, 우선 관찰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신문연 칼럼>의 형식을 빌려 지역문화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주체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며 그들의 실천을 제 3자적 시각에서 담아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렇게 나온 것이 단비의 첫 칼럼이었다. 단비는 지역문화활동 속에서 ‘나’를 돌보기 위한 참여자들의 실천이 점차 공감과 유대, 연대로 확정되어가고 있으며, 지역문화 사업이 그 매개가 되고 있음을 발견했다. 두 번째 칼럼을 쓴 태준은 문화 정책이 ‘문화민주주의'라는 패러다임으로 전환된 상황 속에서 그 세세한 변화 상을 ‘연구'로 살펴야함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이 ‘서대문’이라는 주제로 쓰여지는 마지막 칼럼이다.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건 지역 주민과 지역 문화, 그리고 지역이라는 공간이다.


칼럼이 세 편 나오기도 전에 다른 일도 있었다. 지난 12월 9일에 5년간의 서대문구 지역문화 사업을 정리하고 성과를 나누는 지역문화포럼 <서대문구 지역문화, 어디까지 왔는가?>가 열렸고 신문연이 그에 모더레이터로 참여했다. 발제와 토론으로 이루어진 행사에서 발제자와 토론자들은 지역문화 사업을 수행한 경험을 나누었다. 서대문의 예술(적 작업들을 수행할 수 있는) 공간들을 찾고 이를 주민들과 연결하는 사업(<서대문을 예술마을로 만들기>), 숲이라는 공간을 활용해 주민이 스스로와 공간을 돌보고 ‘반려하는 개인'으로 만들어내려는 작업(<다음을 위한 닿음>) 등에 대한 발제를 들으며, 얕게나마 지역문화 사업이 지역 주민과 지역 문화, 지역 공간을 매개하려고 시도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행사의 사회를 맡아 이런저런 질문들을 던지면서 다음과 같이 자문했다. 지역문화사업이 겨냥하고 있는 ‘매개’는 오늘날 어떤 양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가? 어떤 양상이기에 지역문화사업이 이 매개를 재건하거나 구축하려 드는가? 더 쉽게 말해, 지역이란 공간은 과연 오늘날 지역의 주민들에게 어떤 의미인가? 그 관계에서 문화 그리고 연구의 역할은 무엇인가?


오늘날 한국에서 ‘지역'이라는 기표는 서울과 수도권 바깥의 무언가, 그리고 회복되어야 하는 무언가로 그려진다. 지역소멸과 서울 중심주의를 말하고 대안으로서 지역자치분권이 외쳐지는 현실 또한 그 연장 선상에 있다. 그러나 과연 우리는 다른 지역 대신 서울 지역을 더 갈망하고 있는가가 의문이다. 오히려 서울을 포함하여 많은 이들이 지역에 발은 딛되 마음은 딛지 않고 살아가며, 심지어 서울 주민에게도 가상인, ‘서울'에 우리의 정서를 투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스무살이 되어서부터 서울에 살기 시작한 나는, 마포에 벌써 십 년이 넘게 살았지만, 이 동네, 이 지역을 ‘내 것'이라고 부를 수 있는 애착을 크게 가지고 있지 못한 듯 싶다. 학교 공동체가 있지만 그것도 ‘마포’ 보다는 학교의 이름이 크게 작동하는 공간이니 마포의 무언가라고 이야기하기도 어려워 보인다. 오히려 마포는 공덕 일대의 오래된 식당들과 홍대와 연남 일대의 ‘힙함’을 재현하는 미디어 속에서 내게 인식된다. 따라서 마포는 내게 공허하게 읊어댈 수 있는 자랑거리일지는 몰라도 마음 깊이 애정하고 관심 갖는 무언가는 못되는 셈이다. 나는 마포에 무슨 일이 있는지 잘 모른다.


다시 주민과 공간의 매개로 돌아와보자. 주민과 공간을 매개하는 문화는 곧 의미의 문제다. 주민과 공간에 대한 의미의 재구성이 필요하다. 우리 지역엔 이렇게 멋진 것들과 맛난 것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통해 자긍심을 고양하자는 말이 아니다. 지역에 누가 살고 있으며, 어떤 일들이 있는지, 더 나아가 아파트와 공원 재개발 과정에서 누가 쫓겨나 어디에 정착하게 되었는지, 왜 그 오래된 손뜨개방이 홍은동을 떠날 수 밖에 없었는지, 결국 누구와 연대해야 하며 누구와 싸워내야 하는지 등의 지역의 속사정 이야기를 하자는 말이다. 속사정을 알아야 마음을 줄 수 있다. 그리고 행위자로서 나를 위치시킬 수 있다.


문화를 통해 주민과 공간을 매개하고자 하는 노력들은 이렇게 지역과 주민의 사정들을 공유하고 그 안에서 주민들이 스스로를 지역 속에 위치시키도록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서대문N 사업은 지난 5년 간의 작업을 통해 주민과 지역, 그리고 주민들 사이를 문화라는 요소로 연결하고자 노력해왔다. 앞으로의 사업이 이러한 연결들을 더 깊은 정서적 결착과 맥락적 유대로 만들어내길 기대한다. 그 속에서 문화-연구는 그러한 사정과 조건들 속 의미 작용들에 대한 관찰과 이해를 해내는 역할을 할 수 있겠다. 연구도 무언가를 애정하는 때에만 가능하다고 믿는다. 내가 내 지역을 더 사랑하고 들여다보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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