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이 감소하고 있다, so what?


한국사회의 불평등은 오히려 감소하고 있다. 이 문장을 결론으로 하는 논문, 칼럼, 블로그 글 등이 몇몇 사회학자들로부터 생산되고 있다. 주로 불평등 문제에 관한 통계적 연구를 하는 학자들의 작업에서다. 이들은 세대 간 계층이동이 어렵고 기회 불평등이 공고화된 한국사회에 대한 진단들을 통계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반박한다. 불평등의 정도를 따져볼 수 있도록 하는 시계열 비교나 국가 간 비교는 중요하며, 그러한 맥락에서 자료(data)에 대한 적절한 분석이 축적되는 일은 필요하다. 그런데 이같은 작업이 우리가 불평등에 관해 이야기하는 사회적 과정 내에서 어떤 자리에 위치하는지를 생각하면서 못내 아쉬움이 생긴다.

우리 사회 불평등의 극심함을 이야기하는 말들은 주로 자료를 바탕으로 한 정제된 객관 언어의 세계가 아니라 의도와 주관, 맥락이 중요한 정치적 언어의 세계에서 발화된다. 이를테면 출신 배경(이를테면, 수저계급)에 따른 자산 격차나 기회 격차를 얘기하는 청년들에게, 혹은 이러한 불평등에 대한 감각을 정치화하고자 하는 정치인이나 담론 생산자에게, 그러한 불평등을 객관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지의 여부는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일이라고도 볼 수 있다. 오히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작금의 상황을 ‘불평등’이라는 개념으로 틀 짓는 일이다. 즉, 몰가치 상태의 객관적인 현실을 발굴하여 소개하는 데 이들은 이해관계를 걸지 않는다. 오히려 특정한 가치에 기반하여 주관적인 현실을 구성하는 것이 이들이 하려는 일이다. 현실을 바라보는 특정한 시선을 도입하는 것은 동시에 여기에 대하여 어떻게 대응하여야 할지, 개인 차원에서의 행동 방침이나 거시적인 미래의 비전과 목표를 제시하는 일이기도 하다. 불평등 해소를 외치는 정치적 언어들은 그 구체적인 대안 면에서는 다소 모호할지라도 어쨌든 평등이라는 가치를 우리가 반복적으로 되짚도록 만든다는 데 그 의의가 있다.

특정한 주장을 평가하기 위해 그것의 진리 여부를 판단하는 것과 그것의 진정성 혹은 사회적 효과/가치를 묻는 것은 서로 연관되어 있지만, 어쨌든 별개의 영역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따라서 진리 주장에 상대하기 위해 객관적 자료 없이 우기는 것이 공허한 만큼, 반대로 정치적 언어를 (통계를 경유한 논증이 필연적으로 안고 가게 되는 불완전성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자료가 보여주는 객관적 진리값만을 바탕으로 반박한다면 그것 또한 충분하지는 못하다. 불평등에 대한 지표가 과거에 비해 나빠진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불평등이 극심해졌다’라고 느끼는 생활세계 내에서의 인식이나 그 문제의 해결에 대한 정치적 주장의 정당성을 훼손하지는 못한다.

사회과학의 객관 언어가 다른 논문의 연구결과, 즉 객관 언어를 반박하는 것을 넘어 정치적 언어들을 직접 상대하게 될 때, 사실상 객관 언어는 정치적 언어로 전화하게 된다. 과학의 중립성 신화는 이러한 효과에 대한 성찰을 방해하지만, 이를테면 ‘불평등이 늘어나고 있다는 말들을 하지만 과학적으로 볼 때는 아니’라는 객관 언어는 그러니까 지금 불평등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잘못되었다는 식의 정치적 주장과, 혹은 근본적으로는 ‘적당한 불평등은 필요하다’고 보는 정치적 입장과 친연성을 가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실 우리는 모든 논문에 대한 토론, 비평, 담론에서 ‘so what?(그래서 어쩌라고?)’ 이라는 반응을 하는 쉬운 비판을 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불평등 해소’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의 실천적 문제로 논의를 확장시키지 않고, 불평등의 감소 추세를 논증하고 그것과의 대립각에 ‘사회적 통념’을 세우는 사회과학의 주장에서 독자가 허무함이나 무력감을 경험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에 가깝다. 이를테면 불평등이 줄어들었다고 한다면 그것이 어떤 정책이나 혹은 어떤 변화의 효과인지, 혹은 사람들이 감각하고 있는 불평등을 왜 통계수치는 반영하지 못하는 것인지 등의 문제, 그러니까 사실 그 부분을 현재 우리가 활용 가능한 데이터로 논증하기는 어렵기에 건드리지 않는다고 말하는, 불평등을 둘러싼 실제적인 인과에 대한 추가적인 탐구가 필요할 것이다.

자료 기반의 통계적 연구가 대세를 이루게 된 사회과학 영역에서, 거기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충분히 진행 가능한 불평등(inequality) 연구가 사회학 내에서 일종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그리고 현재의 불평등 연구가 다룰 수 없거나 혹은 다루지 않는, 이를테면 좀 더 고전적인 계급/계층 논의가 천착했던 문제들, 기술적(descriptive)이거나 통계자료 내에서만 설명적인 논의를 넘어선 인과에 대한 과감하고도 비판적인(critical) 논의들이 다시 필요하다는 식의 논의들이 해당 영역 내에서도 제기되고 있는 것으로도 알고 있다.

이 짧은 글을 통해서 그러한 내용을 논리적으로 쓸 수는 없다고도 생각했고 내 역량으로 가능한 일도 아니다. 다만 불평등이라는 현재 한국사회에서 가장 주요하게 논의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서, 그것이 줄어들고 있다는 ‘통념과는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이 가장 최전선의 논쟁 지점이 되는 것에 대해, 내가 가지는 아쉬운 마음에 대해서 스스로 좀 더 알고 싶고 또 이 감정을 공유하고 싶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불평등 연구라는 영역이, 당연한 말이지만 데이터를 다루는 학자들에 의해서만 독점적으로 점유되지 않도록, 이를테면 질적이거나 문화적이거나 다른 방식의 접근들이 좀 더 활발히 이루어져야 하겠다 하는 생각도 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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