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최저임금운동의 말들 ① "최저임금은 청년임금">)에서 이어집니다.
"지겹다. 너무 지겹다."
최저임금위원회에서 노사의 양측 최초요구안을 받아들고 내려던 성명 초안의 첫 줄이었다. 결국 다른 이의 문장으로 성명이 나갔지만 최저임금을 두고 드는 첫 번째 생각이 '지겹다'는 데는 변함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번 최저임금 이야기를 꺼내본다. 지겹다고 내버려두기에 최저임금은 당신과 나, 노조가 없는 모든 이들의 임금이기 때문에...
지난 글에서 살펴보았듯 청년운동이 최저임금이 그 누구보다도 '청년'의 임금이라는 점을 각인시키면서 최저임금이 주요한 의제로 떠올랐고 최저임금 인상을 위한 담론적 동력이 형성되었다. 남은 것은 어떻게 그 인상을 이루어낼지였다. 최저임금에 관한 여론을 환기한 데 주요한 역할을 한 최저임금운동의 말이 "최저임금은 청년임금"이었다면, 최저임금 '인상'을 이끈 최저임금운동의 말은 "최저임금 1만원"이었다.
'최저임금 1만원'의 시작은 2012년 대선이었다. 당시 무소속으로 출마한 김순자 후보 캠프의 주요 공약이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인상"이었다. 선거 이후 김순자 후보 캠프에 참여했던 이들을 중심으로 '알바연대'가 꾸려졌다. 이들은 공약으로만 남기기 아까운 최저임금 1만원을 운동을 통해 실현시키고자 했다. 서명운동, 강연, 토론회를 개최한 것은 물론이고 '최저임금 1만원위원회'를 만들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앞으로, 경총 앞으로, 고용노동부 장관 앞으로 갔다. '최저임금 1만원'을 알리기 위해 어디든 다니다 1500만원의 벌금을 선고받기도 했다.
이후 제도정치의 영역에서도 '최저임금 1만원'이 등장했다.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의 당대표 선출을 위한 경선에서 세대교체를 내걸고 나선 이인영 후보가 '2022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다. 가장 강력한 후보였던 문재인 당시 의원은 훗날 대선공약이 된 '소득주도 성장'을 당시에도 주장했는데, 이인영 의원은 구체적 계획 없는 소득주도성장은 "공허하다"면서 적정 임금을 보장함으로써 내수와 소득을 높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인영 의원은 경선과정 내내 최저임금 공약을 줄기차게 강조했다.
'최저임금 1만원'을 노동계에서 공식 기조로 확정한 것도 2015년이었다. 민주노총은 2015년 4월 총파업을 예고하며, 주요 요구안 중 하나로 "최저임금 1만원으로 인상"을 채택했다. 이후 민주노총의 최저임금위원회 요구안에도 '최저임금 1만원'이 담겼다. 이제까지 노동계의 최저임금 협상요구안이 노동자 평균임금이나 생계비를 기준으로 추산된 금액이었던 것에 대조적이다.
'최저임금 1만원'을 중심으로 최저임금 인상에 여론의 힘이 실리기 시작하면서 정부도 이 목소리를 외면하기 어려워졌다. 2015년 3월, 최경환 당시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적정 수준으로 임금을 인상하지 않으면 내수가 살아날 수 없다. 현 정부 들어 최저임금 인상률을 연간 약 7%씩 올렸고 올해도 최저임금을 빠른 속도로 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언급한 것이다. 그의 머릿속의 "적정 수준"이 1만원일리는 없겠지만 최저임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공식적으로 언급한 셈이다. 내수경기 부양의 목표도 있었지만 바로 다음 해인 2016년 총선을 앞두고 있던 시점이었다. 실제 2016년 총선에서 새누리당을 제외한 모든 정당이 '최저임금 1만원'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그리고 2017년, 우리가 모두 기억하고 있듯 5명의 주요 대선 후보가 모두 최소 임기내에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인상할 것을 약속했다. 뿐만 아니라 최저임금 운동이 그 어느 때보다 활발했던 박근혜 정권에서 같은 보수정권이었던 이전 정권에 비해 높은, 현 정권의 평균 인상률에 뒤지지 않은 인상률을 기록한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표 1>). 분명한 운동의 성과이다.
<표 1> 최근 5개 정부 최저임금 인상률
(단위: %)
제도 정치에서도, 노동계에서도 '최저임금 1만원'을 받아들이게 된 것은 이 말이 가진 매력 때문일 것이다. 이 구호는 무엇보다 선명하다. 그간의 적정 최저임금을 추산하던 복잡한 계산식을 옆으로 밀어두고 1만원으로 올리자는 화끈한 주장이다. 단순하고, 쉽고, 분명하다. 스노우와 동료들(Snow et al., 1986)은 사회운동 조직이 더 많은 시민을 동원(mobilization)하는 전략으로서 프레이밍(framing)을 제시하였는데, 이들에 따르면 세상을 이해하는 틀(frame)을 형성하는 과정인 프레이밍의 주체로서 사회운동조직은 잠재적 상태의 감정에 프레임을 연결(frame bridging)하는 작업에서부터 동원이 시작된다. '최저임금 1만원'이라는 구호는 저임금 노동자의 분노를 최저임금의 대폭 인상 요구로 연결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상황은 역전되었다. 문재인 정부 들어 두 해 연속 최저임금을 두자릿수로 올리면서 이른바 '최저임금 역풍'이 시작되었다. 인상된 최저임금이 모든 경제문제의 원흉이 되었다. 한때 대선공약이기까지 했던 ‘최저임금 1만원’은 꺼내지도 못할 말이 되었다. 사람들은 저임금 노동자의 고충을 말하는 대신 편의점 사장님, 영세 자영업자의 어려움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박근혜 정부 시기 발의된 최저임금제도 관련 법안이 대부분 최저임금 인상을 위한 야당(새정치민주연합, 정의당)의 법안이었던 데 반해 21대 국회에서 발의된 최저임금제도 관련 법안이 모두 미래통합당의 최저임금 인상의 효과를 제약하기 위한 법안(예를 들어 차등적용을 가능하게 하는 법)인 데서도 달라진 정치적 기회구조를 파악해볼 수 있다.
'최저임금 1만원'에는 몇 가지 함정이 있다. 먼저, 1만원은 진짜 적정한 임금수준이 아니다. 1만원이 과한 금액이라는 주장이 아니다. 최저임금의 적정수준은 물가상승률과 경제성장률, 임금상승률, 임금격차 등 수많은 조건을 고려하여 해마다 다르게 추산될 수밖에 없는데 최저임금 1만원은 5년째 반복되었다. 노동계는 매번 달라지는 수치를 1만원에 끼워맞췄다. 두해 연속 두 자릿수의 인상률로 최저임금이 올라간 이후에도 같은 구호가 계속 되면서 피로감이 쌓였다. 게다가 '최저임금 1만원'은 언젠가 자연스럽게 도달하게 될 수치인 데도 최저임금 운동에서는 1만원 이후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달라진 주변환경에 어려움을 느끼면서도 변화는 주저했다. 이러다 수년 뒤 최저임금이 정말로 1만원이 되면 우리는 마냥 기뻐할 수 있는가.
최저임금 기사의 댓글을 보다보면 심심치 않게 이런 반응들을 보게 된다. “최저임금 그렇게 올릴거면 10만원 20만원씩 올리지 뭐 하러 만원 하냐”. 이 답에 ‘최저임금 1만원’으로는 항변할 수 없다. ‘최저임금 1만원’은 최저임금을 파격적으로 올리자는 것이 핵심인데 이 구호가 등장했을 때의 최저임금의 수준과 현재의 최저임금 수준이 다르기 때문에 이전의 설득력은 최저임금이 올라갈수록 떨어질 수밖에 없다. ‘여전히 더 올려가야 한다’와 ‘너무 낮으니 획기적으로 올려야 한다’는 전혀 다른 주장이다.
그렇다고 '최저임금 1만원'이 문제가 많은 말이기 때문에 내걸지 말았어야 했다는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니다. 운동의 말(frame)은 운동이 처한 기회구조에 따라 운동의 주기에 따라 변화(frame alignment)해야 한다. 2015년 민주노총이 처음으로 최저임금 1만원을 공식 요구안으로 결정했을 때, 1만원을 실현하기 위한 인상률은 무려 79.2%였다. 그만큼 이 구호가 1만원을 현실에서 바로 이뤄낼 수 있다고 믿는 수치가 아닌 정치적 구호였음을 시사한다. 8년 전, 혹은 5년 전에는 기존의 최저임금을 상상하는 한계선을 뛰어넘는 데 이 구호가 적절하고 유효했다면, 지금의 상황에는 최저임금 운동을 새롭게 만들어갈 새로운 프레임이 필요하다.
아쉽게도 최저임금 운동에서 아직은 '최저임금 1만원'을 대체하는 프레임이 탄생하지 않았다. 그 길이 어디일지 감히 예상할 수 없지만, 지치지 않고 숨지 않고 토론을 계속해 나가기를 간절히 바란다. 한 가지 방법은 과도하게 정치화된 금액 수준 결정에서 힘을 빼고 최저임금 제도의 허점을 개선해나가며 최저임금의 취지인 임금 불평등 완화를 간접적으로 실현하는 방법이다. 청년유니온에서 진행한 <더 나은 최저임금을 위한 토론>에서 최저임금 제도를 개선하기 위한 다양한 선택지(최저임금위원회를 임금제도정책위원회로 격상, 주휴수당 기본급화, 각종 지표에 연동해 자동인상, 비정규직에 정규직보다 높은 최저임금 적용)를 제공하자 개인당 10개의 표가 주어졌음에도 '현행유지'를 선택한 이는 한 명도 없었다. 그동안 최저임금 제도의 개선은 임금액 결정에 밀려 부차적인 것으로 다루어져 왔으나 최저임금 운동은 이제 최저임금 인상 이후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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