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영] 운동하며 운동을 연구한다는 것


“2020년 적용될 최저임금 수준은...”


이미 정신은 아득하고 손은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공식 회의 시간만 13시간이 넘어가고 있었다. 결과가 발표되고 집으로 돌아와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 입과 목 사이에 아보카도 씨앗만 한 무언가가 콱 박혀있는 것만 같다. 아무것도 넘길 수도 뱉을 수도 없는 그런 느낌...


나는 사회운동을 공부하고 청년유니온의 최저임금 운동으로 석사학위 논문을 썼다. 연구주제를 이렇게 잡았다고 이야기했을 때 선생님들은 “한 발은 현장에” 두어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연구계획서 발표를 마쳤을 때 지도교수님은 “이제 네가 할 일은 이 주제에 푹 담가지는 거”라고 말씀하시기도 했다. 아쉽게도 논문을 쓸 당시에는 그러지 못했다가 졸업 이후에야 본격적으로 연구와 청년유니온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확실히 지금은 청년유니온 활동에 푹 빠져들어 있다. 그 과정에서 새롭게 얻게 된 것들이 많다. 최저임금위원회에도 배석의 자격으로 회의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다. 최저임금위원회는 구체적 회의속기록이 남지 않는 비밀스러운 회의이다. 청년유니온이 노동자 위원으로 최임위에 들어가기 전에는 요약 형태의 회의록조차 제대로 작성되지 않다가 청년유니온의 문제 제기로 본격적인 회의록 작성이 시작되었다. 나는 그곳에서 열심히 회의 내용을 기록하고 주요 내용을 조합원에게 공유하는 역할을 맡았다.


최저임금위원회 회의장에 앉아 바쁘게 회의 내용을 기록하고 전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연구자로서 많이 반성했다. 그전까지 청년유니온의 최저임금위원회 참여는 상징적 성과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렇게 이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연구에서 잘 다루어지지 않았고 간략히 뭉개지고 넘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실제로 들어와서 지켜본 이곳은 치열한 정치의 장이었다. 많은 것들이 밀고 당겨지며 그 안에서 울고 웃는 자가 수시로 바뀌었다. 이 과정을 진작에 지켜볼 수 있었다면, 아니면 이 과정에 참여했던 활동가들과 더 가깝게 지내고 더 깊게 소통했다면 나의 연구가 조금 더 풍부해지지는 않았을까?


한편, 급박하게 돌아가는 최저임금 이슈와 함께 청년유니온 활동에 젖어 들면서 개인적으로는 연구자로서의 나와 활동가로서의 내가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운동을 하는 활동가와 그 운동을 연구하는 연구자 사이에서 균형을 못 잡고 비틀거리고 있었다. 운동은 다른 일과 병행하기에 심리적으로, 물리적으로 많은 희생을 요하기에 한발만 걸치려고 했다가도 어느새 턱 끝까지 물이 차올랐다. 당장 급한 일에 밀려 원래 계획하던 글을 읽고 쓰는 작업을 게을리하게 되면서 스스로와 함께 연구하는 동료들에게 죄책감이 들었다. 동시에 연구자로서 분석해야 하는 연구대상의 메시지를 직접 쓰고 있을 때 ‘이래도 되나?’ 싶은 혼란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푹 젖어 들었다가 또 한 발만 담갔다가, 어떨 때는 한 발짝 떨어져 냉정하게 바라보는 일은 과연 가능할까? 뜨거움과 냉철함 사이를 자유자재로 오갈 수 있을까? 한 발은 현장에 걸쳐야 한다는, 내가 바라보는 현상에 푹 빠질 수 있어야 한다는 야속한 말씀을 하신 분들은 다들 그 균형점을 찾으셨을까?


솔직히 아직은 답을 내릴 수가 없다. 나는 ‘혼란’으로 이 상태를 규정할 뿐 앞으로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는 알지 못한다. 다만, 시간이 흐른 뒤에 균형에 가까운 어딘가에 서게 된다면 아직은 혼란스러운 이 시간이 그래도 큰 배움이 있었던 순간이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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