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영] 운동의 말들 3 - 청년운동과 담론정치의 경로들



각 지방자치단체가 내년도 예산안을 지방의회로 제출하는 시점에서 서울시 청년자율예산의 18%(60억 원)와 광주시의 청년예산 33%(151억 원)가 일방적으로 삭감되는 일이 발생했다. 청년운동 단체들은 발 빠르게 움직였다. ‘청년시민 100인 언택트 기자회견’을 열기도 하고 시의회 의원들을 직접 만나 설득했다. 결과적으로 광주시에서는 광주시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삭감되었던 예산안을 상당 부분 복구한 예산안을 편성하여 본회의에 상정했다. 예상하기 어려웠던 소중한 성과이다.


청년운동에 참여한다는 것 자체가 청년정책의 필요성에 대해 인지하고 있다는 것을 전제하기도 하지만, 청년운동 안에 있다 보면 청년정책과 청년예산의 필요성에 대해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게 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예산이 깎였다는 소식을 들으면 ‘어떻게 청년예산을 깎아?’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 당연하다. 게다가 서울시 청년자율예산은 미리 500억의 예산을 책정하고 그 안에서 청년시민들이 참여한 거버넌스 과정을 통해 편성한 예산이었다. 그러나 예산은 다양한 대안이 경합하는 장이며 그 예산을 편성하는 데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담론 또한 언제나 경합과 토론의 영역이므로 아쉽게도 청년정책과 청년예산은 ‘당연하게’ 합의될 수 없다. 그렇기에 청년운동은 언제나 청년정책의 필요성을 설득함과 동시에 다른 이해를 대변하는 이들과 조율하고 합의해야 한다.


<그림1> 2020년 하반기 ‘예산 삭감' 기사와 ‘청년 예산 삭감’ 보도 추이


자료: 빅카인즈에서 주요일간지 대상 ‘예산 삭감’과 ‘청년 예산 삭감’으로 검색.

2020.12.10. 검색.

주: 예산 삭감 관련 기사 중 매우 일부분인 ‘청년 예산 삭감’의 비중을 보면,

예산 삭감은 청년예산에서만의 문제가 아님을 보여준다.


이때 청년만이 정책의 필요를 지닌, 혹은 정책이 가장 필요한 존재로 포장되는 순간(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청년운동은 함정에 빠지게 된다. 누가 진짜 약자인지 가리는 경쟁이 되는 것이다. 올해만 해도 청년연구 프로젝트를 위해 모인 연구자 모임에서 ‘내가 평소 연구하는 노년층이 더 어려운 것 같은데. 왜 청년이 그토록 어렵다고 하느냐’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기성세대와 청년세대의 대결 구도가 아니라고 여러 번 설득했지만, 연구의 마지막 순간까지 그는 청년들이 패기와 열정으로 가득한 가능성의 시기를 보내지 못하고 보호와 지원이 필요한 사회 취약계층이 되어 안타깝다고 이야기했다. 그의 얕은 생각에 분노하기도 했지만, 이러한 오해는 우리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감각되며, 그 오해의 출발은 청년운동이 오래전부터 사용해왔던 전략적 수사이기도 하다. 10년 전에는 한국 사회 경제구조의 주요한 피해자로서 청년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유리하고 중요한 담론지형이 존재했다면, 현재 시점에서 더 많은 시민의 동의를 받는 데 유효한 전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등장한 설득의 논리가 ‘이행기’로서 청년기와 ‘세대 내 불평등’에 관한 논의이다. 청년을 연령이 아닌 상태로 파악하는 이행기 관점은 청년기를 학교에서 노동시장으로 이행하는 시기로 정의하는데, 이때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나 성별 등으로 인해 발생한 세대 내 격차가 이행의 과정과 결과의 질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며 한번 불안정한 영역으로 이행한 청년은 여기서 빠져나오기 쉽지 않다는 사실이 여러 연구를 통해 입증되었다. 이러한 논리 위에서라면 별 탈 없이 안정 노동시장으로 이행하는 청년은 엄밀히 따지면 청년정책의 대상에 포함되지 않을 수 있다. 청년운동 또한 청년과 교차하는 다양한 정체성을 강조하며 중산층-남성-2, 30대 기준의 표준적 생애주기에 맞춘 이행경로에 맞춘 정책을 거부하는 동시에 ‘청년’을 정책의 대상이 아닌 정책생산의 ‘주체'의 자리에 놓으면서 환경, 젠더 등의 주제를 청년정책 안으로 끌어들여 왔다.


청년 정체성의 정의와 청년의제의 범주를 확대하는 일은 청년운동과 더 많은 이들이 만나는 계기가 되기도 했지만, 의제를 확장하는 것이 운동의 성공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며 또 다른 방향에서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 경계를 확장할수록 주장은 옅어지고 운동 내의 합의는 어려워지며, ‘이것도 청년의제인가?’라는 질문에 명확히 대답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청년문제와 청년정책을 ‘청년이 생각하는 우리 사회의 문제’와 그에 대한 대안으로만 정의하면 모든 사회문제가 청년문제, 모든 정책이 청년정책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힘이 실리지 않는 부작용이 발생한다. 더 많은 정체성의 이해대변이 필요한 상황에서는 어떤 정체성이라도 솟아올라 이해대변의 공백을 메우는 것이 더 효과적일지도 모른다.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문제라고 이야기하는 순간 현재 담론영역에서 이미 ‘문제’로 인정된 문제만 그 중요성을 확보할 수밖에 없고 기존의 갈등선을 대체하는 새로운 갈등이 등장하기 어렵게 된다.


언제나 선택은 양극단의 단점으로부터 얼마만큼 멀어지고 싶은지에 대한 선택이라고 생각하기에, 운동의 경로를 생각할 때도 항상 다소 극단적 결과를 먼저 상상하게 된다. 요컨대 운동의 방향을 설정하는 작업은 명료하지만 좁은 극단과 너르지만 흐릿한 극단 사이 어딘가에 서는 일이다. 사회변화를 추동하는 데 있어 교차하는 이해를 대변하는 폭넓은 결사체가 유리한지(스카치폴, 2010), 특수지지층을 대변하는 결사체들이 더 효과적인지는 청년운동뿐만 아니라 여러 시민사회운동의 주요한 쟁점이기도 하다(에드워즈, 2005). 현실에서도 다양한 결과들이 축적되어 있다. 어딘가에 정답이 있으니 찾아 나가자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 운동이 선택한 위치를 명확하게 파악해야 전략적으로 이를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전략에 따라 그 선택 또한 언제든지 조정될 수 있다. 특히, 연령 기준이 확정적인 청년기본법이 제정되면서 청년정책이 청년이라는 특수한 계층만을 대변하는 것으로 규정되는 상황에서 그동안 세대 내 다양성, 격차를 포괄하는 청년정책을 내세웠던 청년운동은 여러 모순을 마주하고 있다. 운동영역 내의 합의수준을 높이기 위한 더 많은 토론을 제안해본다.



참고문헌


Skocpol, T. (2010). <민주주의의 쇠퇴>. (강승훈 역) 파주: 한울. (원서출판 2003)

Edwards, M. (2005). <시민사회: 이론과 역사 그리고 대안적 재구성>. (서유경 역) 서울: 도서출판 동아시아. (원서출판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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