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영] 운동의 말들



사회운동 연구자에게 ‘동원’이라는 단어는 익숙하다. 사회운동 이론을 공부하면서 가장 먼저 배운 단어이자 가장 강력한 단어가 바로 ‘동원’이다. 사회운동 이론에서 ‘동원’은 목표를 달성하는 데 활용할 자원을 준비하고 조직하는 일을 의미하는 ‘mobilize‘를 번역한 단어이고 ‘mobilize’ 속의 ‘mobile’에는 움직임, 이동의 의미가 담겨있다. 멈추어 있거나 고립되어있는, 혹은 멀리 떨어져있는 무언가를 나에게 끌고와 활용한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자원을 충분히 잘 동원해야 운동의 목표도 성공적으로 달성할 수 있다. 사회운동조직 또한 이 동원이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예상될 때에야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는 다양한 수단 중 사회운동의 방법을 선택하게 된다. 어찌보면 세상은 혼자서 바꿀 수 없으니 운동에 동원이 필수적인 것은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다.


대략 3년 정도의 부족한 공부를 마치고 노동조합에서의 활동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즘 우리가 어떻게 운동을 더 잘 할 수 있을지 이야기하는 발제를 준비하게 되었다. 어깨너머로 배운 게 그거라고 자연스럽게 우리에게는 어떤 자원이 있고 어떤 자원을 더 혹은 잘 동원해야하는지 고민한 내용을 늘어놓았다. 옆에서 설명을 듣던 동료가 ‘동원’이라는 표현은 조합원들이 좋아할 것 같지 않다며 ‘어떻게 함께할 것인가?’로 고쳐주었다. 처음에는 ‘동원’이라는 단어를 더 정확하고 자세하게 설명하면 되는 일 아닌가 싶었으나 곱씹을수록 그 동료의 조언을 이해하게 되었고 그동안 구름 위를 둥둥 떠다니고 있지는 않았나 반성했다.

누군가 동원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인다면 그 이유는 동원이 차가운 단어이기 때문이다. 동원에는 감정이 빠져있다. 특히 동원 ‘되는’ 이의 감정이 빠져있다. 뜨거운 생각도 차갑게 전달해야하는 학술적 영역에서는 ‘동원’이라는 객관적 단어를 무리없이 사용할 수 있을지 몰라도 현장에서 ‘동원’이라는 단어를 ‘함께’라는 단어로 고쳐야 하는 이유는 사회운동이 객관적 구조 위에서 합리성에 기반해서만 작동하지 않는 사회적인 현상이자 문화적인 현상이기 때문이다.


사회운동 연구의 흐름에서도 ‘감정’은 비교적 최근에서야 주목받기 시작했다. 사회운동 연구는 사실 “쟤네들은 도대체 왜 저러는 거지?”라는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심리학자 르봉 등은 집합행동을 집단적 분노에 기인한 본능적 행동의 분출 등으로 해석하면서 사회운동 자체를 비정상적인 상태로 규정했다. 그러나 1970년대 중반, 집합행동에 대한 기존의 설명을 거부하고 사회운동 또한 이성적 행위임을 증명하는 연구들이 쏟아져나왔다. 이 시기 연구들에 따르면 사회 부조리를 향한 분노는 어느 사회에나 항상 존재하기 때문에 사회운동이 발생하는 결정적 이유는 되기 어렵다. 그보다는 정치적 목표를 실현하기 위하여 모인 사람들이 공식적 절차-정당이나 선거와 같은 제도정치를 경유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판단하거나, 그 경로가 스스로에게 닫혀있다고 판단할 때 사회운동을 전략적이고 합리적인 수단으로 선택한다고 주장했다. 이후로 사회운동 연구는 대부분 이러한 입장 위에서 이루어졌다. 사회운동이론은 성공적으로 사회운동의 합리성을 강조해왔으며 그중 가장 먼저 등장한 강력한 이론이 ‘자원동원론’이다.


자원동원론 덕분에 사회운동이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인 행위라는 주장은 성공적으로 기각되었다. 그러나 사회운동을 이성적 행위로 규정하게 되면서 오히려 ‘감정=비합리성’ 구도에 갇혀버리는 부작용이 발생했다. 감정이 개입되면 합리적이지 않은 것처럼 여겨지므로 사회운동 이론에서 ‘감정’에 대한 논의는 꽤 오랜 기간 추방되었다. 실제로 우리는 분노로부터 사회운동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은데도 말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기반으로 사회운동에서 감정, 정체성 등 사회운동의 문화적 차원을 분석한 연구들이 등장했다. 이러한 접근에 따르면 감정은 합리성을 해치는 존재가 아니라 상호작용을 이루는 존재다. 사회운동조직은 세상에 늘상 존재하는 수많은 분노 중 어떤 분노를 선택하여 조직하고 공명(resonance)할지 합리적이고 전략적으로 결정해야 한다. 조합원들에게 ‘동원’이 아닌 ‘함께’를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와 같다.


사회운동에 대한 문화적 접근은 사회운동이 형성하는 공동의 정체성, 이들이 느끼는 분노 등의 감정, 사회운동이 사회(문제)를 규정하고 진단하는 방식 등을 포괄한다. 그리고 사회운동이 만들어 내는 정체성과 감정, 규정과 진단은 모두 ‘말’을 경유한다. 어떻게 세상의 부조리를 언어화하여 해석하는지에 따라, ‘우리’와 ‘그들’을 어느 지점에서 구분하고 어떻게 표현하는지에 따라, 변화의 종착지를 어떤 언어로 표현하는지에 따라 운동의 성패가 갈린다.


앞으로의 칼럼에서는 사회운동이 다름아닌 ‘말’을 통해 지배적인 기존담론을 전복해 낸 사례를 소개할 것이다. 이 기획에는 개인적 욕망이 담겨있다. 올해 안에 최저임금 운동의 프레임 변화와 노동운동조직 대응을 분석하는 논문을 쓰고싶기 때문이다. 또한,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의 일원으로서 사회운동을 문화적 시각에서 접근하는 일을 게을리 하고싶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운동의 ‘말’을 다룬 흥미로운 논문이 있다면 소개하겠지만, 가장 먼저 사회운동 연구자로서 주목하고있는 운동영역의 프레이밍부터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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