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영] 사과 잘 하는 법?


   소셜 미디어의 확산과 더불어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채널로 다양한 이야기를 하게 되면서 라고 해야할까, 우리 사회의 정치적 올바름의 기준이 비교적 높아져서 라고 해야할까. 우리는 요즘 참 많은 사과문을 읽게 된다. 이유야 어찌 됐든 사과와 사과문이 많아지면서 때로는 사과가 더 큰 화를 부르기도 한다. 사과문에서 묘하게 억울함의 정서가 풍긴다든지, 무엇을 잘못했는지 명확하게 서술하지 않고 그저 ‘물의를 일으켜 죄송합니다’ 라든지. 잘 쓰지 못한 사과문에 사람들은 2차로 분노한다. 온라인 검색 사이트에 ‘사과문’을 검색하면 사과문에 들어가야 할 내용과 들어가면 안되는 내용이 정리된 ‘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이제 잘 쓴 사과문의 기준을 갖게 되었다. 사실 사과문 답지 않은 사과문을 자주 접하던 시기에는 이 꿀팁이 마치 속 뚫어주는 사이다처럼 느껴졌다. 나 또한 누군가 쓴 사과문을 보면서 이 기준을 옆에 두고 평가해본 적이 있다. 또 내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 사과를 준비하며 이 리스트를 두고 혹시 빼야하는데 들어간 것은 없는지, 넣어야했는데 빠진 것은 없는지 고민했다. 나같은 사람이 나만 있는 것은 아닌지 요즘 온라인에서 마주치는 사과문들은 꽤나 유려해졌다. 사과문에 대한 반응도 독특한데, 사과문이 올라오면 잘못된 발언이나 행위에 대해 이야기 하기보다는 사과문이 제대로 쓰여졌는지를 평가하고 적절히 잘 쓰여진 사과문이라면 오케이 사인이 떨어지듯 통과된다. 좋은 사과문은 때로 칭찬을 받기도 한다.


   ‘사과’라는 행위에 이렇게까지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안타깝게도 사과받을 일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최근 정치적 입장이 전혀 다른 분들과 일주일 간 함께 외국을 방문하는 프로그램을 다녀왔는데 안 들으면 좋았을, 아니 사실 애초에 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발언을 들었다. 소소한 복수심으로 그 발언을 공개하자면, 하나는 “광주/전라도 출신 중에 빨갱이가 많아서 사기꾼 기질이 있는 사람이 많다. 내가 겪어보니 실제로도 그렇다.” 였고, 다른 하나는 “급도 안되는 게, 수준 떨어지게”였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두 사람 모두에게 구두로 사과를 받았다. 하지만 그 과정은 전혀 달랐다. 


   차량 이동중에 ‘빨갱이 발언’을 한 사람은 공교롭게도 내가 광주 출신이라는 걸 뒤늦게 알고 놀란듯 했다. 물론 그자리에 내가 없었다고 해도, 내가 광주출신이 아니라고 해도 그 발언은 여전히 잘못되었지만, 그동안 주로 만나던 사람들 사이에서 필터링 없이 해왔던 이야기가 어느 순간 누군가에게 큰 상처를 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새로이 깨달은 것 같았다. 그래서 그 사람이 진짜로 반성했을지, 나에게 미안했을지, 다시는 그런 발언을 하지 않을지는 타인인 나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나와 대화하는 과정에서 그 사람이 이 발언을 심각한 일로 인지하고 있다는 점이 느껴졌다. 그 사람의 사과에는 ‘본의 아니게’, ‘그럴 뜻은 아니었지만’, ‘그럴 의도는 아니었지만’, ‘앞으로는 신중하게’가 계속 해서 등장했지만 어쩔줄 몰라하는 모습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피하기 보다는 계속 대화를 시도하는 모습에서, 이후 토론 과정에서 입장이 다른 사람을 배려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에서 나는 그사람의 사과를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한편, ‘격 발언’의 당사자는 공식 프로그램 중 논쟁적 대화를 하다가 “급도 안되는 게 수준 떨어지게”라는 발언을 했다. 크지는 않았지만 한국인 참가자는 모두 들을 수 있는 데시벨이었다. 그는 내가 주최측에 한국에 돌아가 공식적으로 문제제기를 하겠다고 항의한 뒤에 나를 따로 불러내 사과했다. (그 전에는 다른 참여자에게 ‘자기가 잘못한 건지 모르겠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의 사과는 논리정연했다. 받아적는다면 잘쓴 사과문의 좋은 예가 되었을 것이다. 그는 어떤 마음에서 나온 발언이었는지 설명하면서 자신이 기억하는 발언은 내가 기억하고 다른 참가자들이 기억하는 발언과 어떻게 다른지 덧붙였다. 비록 서로 기억하고 있는 워딩은 다르지만 어떤 점에서 문제적이었는지, 얼마나 반성하고 있는지, 어떤 방법으로 노력하여 재발을 방지할 것인지 설명했다. 사과를 받지 않을 논리를 찾을 수 없을 정도였다. 사과를 마친 뒤 그 사람은 너무나 홀가분해 보였다. 그 모습이 괘씸했는지 내 마음은 풀리지 않았다. 나중에 알게 된 바로는 사과하기 전 일종의 대책회의에서 사과를 결의하며 다른 사람에게 “나 그런 거(사과) 잘 해”라고 했다고 한다.


   이 경험을 곱씹은 뒤에 결국 ‘좋은 사과문’의 기준을 마음속에서 폐기했다. 결국 너무 당연한 말이겠지만 형식보다 마음이 중요하다. 사과가 ‘쎄하게’ 느껴진다면 그 사과에 들어가야 할 항목이 빠져서가 아니라 반성의 마음이 빠져서일 것이다. 게다가 사과는 필연적으로 그 이전에 발생한 잘못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잘못을 뛰어넘어 칭찬해야 할 사과는 있을 수 없다. 


   최근 누군가의 사과문이 올라오면 ’빠른 피드백을 올려주어 고맙다’는 식으로 오히려 칭찬을 하거나, 문제를 제기했던 사람에게 ‘사과했으니 이제 글을 내려달라’는 장면들을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그때마다 ‘쎄하게’ 느껴졌던 감정을 직접 경험해보니 이해할 수 있었다. 어느 순간 사과를 함에 있어 반성하는 마음보다 사과의 형식이 더 중요해진 것은 아닐까? 글의 서두에 썼던 것처럼 사과할만한 발언이 많은 사회다. 나를 포함하여 모든 사과하는 사람들에게 제안하고 싶다. 마음으로 충분히 반성한 뒤에 사과하자고.


조회 169회

사단법인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2019 by 김선기. Proudly created with Wix.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