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의 어깨에 올라서서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라 - 아이작 뉴턴”
구글스칼라(구글에서 제공하는 학술논문검색사이트)를 오픈하면 검색어박스 하단에 이런 글을 발견할 수 있다. 여기서 거인은 지식을 생산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 누구나 한번쯤, 아니 연구를 하는 매 순간 의식하게 되는 기존의 연구 흐름, 지식장 자체이다. 공부를 하고 연구를 하는 사람 누구도 이 거인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일단 이 거인의 어깨에 올라서서 어떤 문제를 정의하고나면 그는 하나의 준거점이 되어 연구의 대상을 결정하고 개념과 연구틀, 잠정적 결론까지 결정지어 버린다.
나는 3년의 코스웤 기간 동안 저 거인의 얼굴이 무엇일까를 고민해왔다. 거인.. 이라고 애둘러 표현하긴 했지만 사실 그는 내가 사회학, 문화연구 등을 공부해오면서 단 한번도 의심하지 않았던 존재이다. 되려 그보다 더 오랜기간 동안 나는 그의 어깨에 내가 잘 올라탈 수 있을지를 염려하며 치열하지 못한 나를 채찍질해왔다. 그러다 반려동물문화를 연구해야겠다는 구상하면서 예상치못한 갈등, 예를 들면 ‘반려동물’을 워크맨과 같은 문화상품으로(만) 정의할 수 있을까? ‘반려동물과 가족이 되었다’라는 사람들의 경험을 ‘의인화’라고 판단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일 순 없을까? 그렇다면 그 경험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라는 고민에 봉착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내가 마주하게 된 거인이 '존재론적 전회(Ontological Turn)'를 주창하는 이론, 연구들이였다.
'21세기 사상의 최전선'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이 새 거인은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왔던 근대 사회과학의 공리, 성찰 양태, 문제틀(problématique)을 비판하면서 그 틀 바깥으로 연구 관점을 확대해야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그들에 따르면 그동안 우리가 자명한 진리처럼 받아들여왔던 이분법적 분리도식들(인간과 자연, 정신과 물질, 인간과 비인간), 자연과 물질을 억압과 정복의 대상으로만 규정하는 사유틀, 그같은 논의의 정점에 있는 근대성에 대한 비판 등이 실제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한 이해를 왜곡시키고 있다라고 비평한다. '인간이 자연을 억압하고 정복해왔다'라는 기존의 상식은 반만 진실이다. 자연/물질은 그렇게 온순하지 않다. 실제 우리가 이 세계에 존재하는 방식은 인간이 자연을 일방적으로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이라는 분리가 무색할만큼 서로 뒤엉켜있고 수많은 관계가 생성되고 변형되면서 세계가 구축된다.
지금의 코로나19사태를 떠올려보자. 중국에서 확진 사례가 보고된 이래 겨우 2-3개월만에 우리의 일상은 물론 한국 사회, 세계라는 감각을 이어주던 모든 네트워크가 감염경로라는 물리적 궤적을 따라 변형되고 있다. 방역이라는 기준을 중심으로 신체를 관리하는 방식, 불안과 고통을 공유하며 생성되는 위생에 대한 감각, '사회적 거리'라는 행태적/윤리적 준거 등등... 새로 생성되거나 변형된 우리의 존재 방식에는 바이러스와 마스크, 진단키트, 정부의 방역정책, 비행기, 병원, 자동차, 교회 등 셀수 없는 비인간/물질들이 뒤엉켜있다. 인간만의 배타적인 모빌리티로 구상된 지구화가 바이러스라는 자연과 결합되어 우리 삶을 이렇게 뒤흔들 것이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번 사태는 우리가 사회라고 상상하는 것이 결국 인간 이외의 존재들과의 관계 속에서 그리고 그 관계들이 맞물리는 과정에서 다중적으로 생성되는 것이며, 누구도 같은 '사회'를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을 체감케해주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그동안 바라봐왔던 사회과학이라는 거인은 코로나사태를 어떻게 설명할까? 아마도 인간중심주의와 기존의 사회적 범주에 갇혀 이 부분적이고 다중적인 변화과정을 원인과 결과로 환언해버릴 것이다. 문화연구는? 아마도 코로나 사태가 어떻게 재현되고 있느냐의 문제에 더 관심을 가지지 않을까. 코로나 사태를 어떻게 경험했느냐를 묻고 그 경험과 맞물려있는 사회의 재편을 입체적으로 조망하기 위해서는 뭔가 다른 이론과 연구 관점이 필요하다. 그게 내 생각엔, 지금껏 우리가 고수해온 인식론과 존재론의 한계를 벗어나 인간 이외의 것, 인간 이상의 조건(more-than-human condition)들을 함께 사유하려는 '존재론적 전회'이다.
이미 출판계에서는 <우리는 결코 근대인인 적이 없다>와 같은 저서를 발표한 과학기술사회학(STS)의 라투르, 우리의 존재방식이 단일한 주체가 아니라 계속해서 무언가와 결합된 사이보그임을 선언하는 도나 헤러웨이, 이들의 사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들뢰즈와 데리다 등의 저작들을 소개하고 있다. (문화일보는 지난 해에 국내 소장, 중견 학자들과의 협업을 통해 존재론적 전회, 신유물론 등 관련 이론가들을 소개하는 시리즈를 반년간 연재하기도 하였다. '21세기 사상의 최전선'이란 표현은 이 시리즈의 제목으로, 각각의 글은 25명의 사상가들을 회고하는 방식이 아니라, 이들의 문제의식을 중심으로 필진들이 이론적인 논의들을 풀어낸 것이다. 존재론적 전회를 경유하는 사회학, 인류학, 지리학, 정치학 등 각 분야의 이론들을 고루 접할 수 있는 의미있는 글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관심있는 분들은 일독을 권해본다. ) 한편 국내 학계에서도 지리학이나 인류학 분야 등에서 인간과 동물/비인간 간의 대칭적 관점을 주장하면서 ‘인간 너머의 사회’에 관한 연구들이 조금씩 진행되고 있다. 존재론 관점을 질적 연구의 방법으로 풀어가려는 시도 또한 '후기질적연구(post-qualitative research)'라는 이름으로 교육학 분야에서 시도되고 있다.
‘존재론적 전회’에 대해 이렇게 정리하면서도 앞서 밝혔던 나의 연구관심인 반려동물문화를 어떻게 연구할 것인지는 아직 막연한 느낌이 있다. 특히 ‘문화’라는 개념이 이미 인간과 자연/물질, 상징/사물로 설명되는 사회범주라고 볼 수 있는데, 라투르가 사회적인 것 대신 ‘결합체’를 정의하듯 문화 또한 그같은 ‘배열’로 접근해야 될는지, 문화연구에서의 존재론적인 전회는 어떤 것이여야할지 여전히 고민이다. 그래서 당분간 이 지면을 통해 나의 연구노트를 공유하고 이를 통해 '천개의 고비'에 함께할 동료들의 의견을 부탁드려볼까한다. 뭐라도 말하고 쓰고 나누다보면, 연구가 되지 않을까? 일단 새 거인의 어깨에 올라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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