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현] 사상 강요하지 말라구요?


두 달 전쯤 동물 해방 운동가들의 이른바 ‘방해 시위’를 놓고 벌어졌던 논란이 여전히 제 마음을 복잡하게 하고 있습니다. 방해 시위는 ‘디렉트 액션 에브리웨어(DxE)’라는 단체의 운동가들이 한 삼겹살 가게에서 손님들을 향해 “음식이 아니라 폭력”이라는 구호를 외친 것이었는데, 이를 담은 영상이 SNS에서 공유되면서 논란이 촉발되었습니다. 영상에 달린 코멘트들의 다수는 방해 시위를 비난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의견 가운데서 눈에 띠게 많이 등장했던 말은 ‘사상 강요’였습니다.


기시감이 들었습니다. 사상 강요라는 말은 퀴어퍼레이드에 관한 기사의 댓글에서 종종 접하던 것이니까요. “‘변태짓’을 하려면 안 보이는 너희 집에서 하지, 왜 공공장소에 나와서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느냐”라는 혐오진영의 항변은 퀴어 퍼레이드가 오히려 내 인권을, 그러니까 동성애를 싫어할 ‘사상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는 주장으로 이어집니다.


이처럼 사상 강요하지 말라는 주장은, 어떤 실천들을 단순한 취향의 문제로 환원하면서 작은 사적 권리만을 누릴 것을 요구합니다. 해당 사안을 공론장에 오르지도 못하게 하는 것이죠. 사상 강요를 운운하는 이들 역시 채식주의자의 취향을 존중하지만, 그 취향을 강요하지 말라고 주장하면서 이를 사적인 영역에 가둬둡니다. 영상에 등장하는 활동가들은 바로 이 사안을 공적 논쟁으로 전화(轉化)하려고 시도했습니다. 육식은 단순히 인간의 입장에서 구성되는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동물이 당면하고 있는 정치적 문제라는 것입니다.


사상 강요라는 말은 미묘합니다. 강요라는 말이 갖는 의미가 단일하지 않은 듯합니다. 그렇다고해서 얼마간의 합의를 이루는 것이 어렵지는 않습니다. 사전적 의미에서 강요는 ‘억지로 또는 강제로 요구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강제성은 사실 비대칭적인 권력관계에서 성립할 수 있습니다. 서울시청 광장에서 일년 중 하루 있는 퍼레이드, 육식당에서의 일시적인 시위가 정말로 강제적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운동들을 다루는 기사의 댓글만 잠시 훑어봐도 이 구조에서 누가 더 강한 위력을 가졌는지 손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실, 소수자 억압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었을 때, 다수자가 오히려 사상의 자유나 표현의 자유를 들먹이며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것이 새삼스럽거나 놀라운 일은 아닙니다. 제 마음을 정말로 복잡하게 만든 것은 트위터에서 ‘사상 강요’를 언급하면서 비난의 코멘트를 단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성소수자로 정체화하는 이들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지난 몇 년간 퀴어를 연구해오면서 트위터에서 형성되어온 퀴어 문화가 일정하게 정치화되어있다는 점에서 이를 중요한 공간으로 인식해온 저로서는 당혹스러웠습니다. 특히 연대를 중요한 가치로 생각한다고 여겼던 몇몇 이들이 그러한 발언에 동조한 것이 저에게 의아함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제가 보기에 어떤 운동이 ‘강요’로서 의미화되는 것은 타인에게 불편한 감정을 불러일으킬 때인 것 같습니다. 활동가들을 비난한 많은 이들은 누가 위력을 갖고 있는지와 상관없이, 영상 속 손님과 주인들의 불편함에 동일시하며 이것이 강요였다고 주장했습니다. 누군가의 기분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 강요라고 한다면, 그럼 사회운동은 원래 사상 강요의 활동인 것 같네요, 라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너무 위험한 발언인가요? 운동은 개인의 신념과 가치 체계가 불평한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면서, 우리 안의 불편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그 신념을 변화시키고자 합니다. 그 불평등한 구조를 유발하는 신념들을 외면한 채 이를 함부로 ‘강제적’이라고 칭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스피박은 자신의 유명한 논문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의 첫 판본에서 “서발턴은 말할 수 없다”고 단언한 바 있습니다. 서발턴의 말이 들리지 않게 만드는 재현체계를 문제 삼은 것입니다. 동물 역시 지금의 인본주의적 패러다임 안에서 말할 수 없습니다. 이 지배적인 패러다임 안에서 동물 문제를 공론화하려는 어떤 몸짓이라도 ‘사상 강요’라고 간단하게 치부해버릴 수 있을까요? 방해 시위의 전략 자체는 문제 삼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단순히 불편감을 유발한다거나 사상 강요한다는 비난으로 이어져선 안됩니다. 우리가 소수자에게 가해지는 억압 구조에 대한 문제의식에 공감할 수 있다면, 동물이 ‘어떻게 말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지’ 그 조건을 따져 묻는 일을 논쟁에 부쳐야할 것입니다. 우리가 타자의 문제를 언제나 나의 문제로, 따라서 공적인 것으로 인식함으로써 운동과 정치의 유효한 전략에 관한 더 나은 논쟁에 발 딛고, 또 연대할 수 있다고 믿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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