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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비] 지극히 사적인 연구



아빠가 기존에 일하던 사업장의 파산신청으로 실업자가 됐다. 3개월치 밀려 있던 임금은 아직 받지 못했고,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일하며 모아놓은 퇴직금은 어느 정도까지 받을 수 있을지 알 수 없어 변호사를 선임해야 한다고 한다. 사측에서 실직처리도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상황인 것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임금과 퇴직금 문제 등으로 골치를 앓고 있는 듯하다. 워낙에 소규모 사업장이었고 존립 자체가 아슬아슬했던 터라 당사자를 포함한 가족들 모두가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는 아니지만, 막상 눈앞으로 이렇게 현실이 다가오니 막막하고 불안한 것은 매한가지다. 나이도 중고령에 접어들어 새로운 일자리를 찾을 수 있는지도 확실치 않아서 더 그렇다.


실직처리 후 실업급여를 받기 전에 아빠는 인력업체를 통해 일자리를 소개받아 일하고 있다. 매일 새벽에 나가서 현장을 할당받아 일하는 방식이다. 모두 건설업 쪽이고, 자신에게 중장비를 운전하는 숙련 기술은 없으니 속칭 막일을 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그렇게 말하는 아빠의 목소리에는 별다른 감정변화도 소진도 담겨 있지 않다. ‘그냥 한다’고. 외려 불안하고 슬퍼지는 건 하염없이 내 쪽이라서 요즘에 주로 중대재해처벌법이나 실업급여 개편안 등에 대한 기사만 줄줄 찾아보고 있다. 나름 노동연구를 전공으로 삼은 사람으로서 이 문제들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는 없었지만, 이런 식으로 ‘내 문제’가 되니 더욱 예민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사실이라고 고백해야겠다.


그동안 수많은 노동통계자료를 참고했고 직업코드며 사업종류, 종사상 지위, 고용형태 등의 변수들을 살펴왔지만, 지금 나는 아빠가 인력알선업체에서 어떤 경로를 거쳐 어떤 식으로 일을 하고 있는지 아무것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단기 일용직, 업체를 통해 ‘일거리’를 ‘소개’받음, 따라서 정해진 노동현장 없음, 상사-책임자 없음, 업무분장 없음, 산재보험 없음. 건설사는 무슨무슨 대기업으로 정해져 있다는데,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현장의 작업반장 정도를 제외하면 서로 다른 지역에서 다양한 업체를 통해 충원되는 단기 노동자들일 것이다. 이렇게 여러 현장을 드나들면 노동자들 사이의 관계 형성은 소원해질 것이고, 현장에서 발생하는 어려움에 대한 대응은 소극적인 양상을 띨 가능성이 높다.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애매한 자리에서, 그러니까 ‘연구자’이자 위험한 막일 노동자의 자녀로서 이런저런 것들을 생각하면서, 아무렴 내가 가장 걱정하게 되는 부분은 ‘사고가 나면 어떡하지?’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 것이 물론 가장 바람직한 상황이겠으나, 모르긴 몰라도 ‘없어도 너무 없는’ 안전망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비극에 앞질러간 불안을 느끼게 하고 외려 그 구조의 부재보다는 ‘일 자체’에 대한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만다. 중고령의, 사장되어 가는 산업의-더 이상은 노동시장이나 사회에서 별다른 가치를 가질 수 없는 기술을 가진 노동자들에게 이제 가능한 일은 ‘이런 일’밖엔 없는 걸까 하는 애처로운 질문을 하게 되는 것. 그들을 보호할 수 있는 제도가 없거나, 있더라도 노동자나 ‘사고’에 대한 책임소재를 모호하게 기입함으로써 최대한 ‘아래’로 책임을 몰아내려는 행태에 대한 불만과 분노보다도, ‘이런 일’에 대해 사회적으로 주입된 방식으로 가치판단을 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는 관련 제도와 안전망의 부재(여기에는 5인 미만의 소규모사업장이 상습적으로 법령과 혜택에서 배제되어온 맥락도 포함되어 있다)는 이런 방식으로 ‘어떤 일’에 대한 사회적 평가절하에 개입하고, 노동자가 성실하게 축적해 온 보상을 ‘정당하게 얻기 위한’ 시도에는 제도적 도움이 탈각되어 사적인 수준에서 대응하게 만듦으로써 불안정성을 가중시킨다(기업이 파산신청을 했는데 어째서 변호사를 선임해 퇴직금을 받아야 하는지!).


나는 언젠가 이렇게 맞닥뜨린 ‘슬픔’을 노동자를 위한 언어로, 실천으로 풀어낼 수 있을까? 가끔은 내가 노동을 연구하는 사람이 된 것이 운명처럼 느껴지면서도, 어쩌면 (지나친 비약이겠지만) 이 사회가 날 이 길로 이끌어 버린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되기도 한다. 고로 나에게는 코스워크와 논문학기를 ‘견뎌내는 것’ 이상의 목표가 생겼다. 부모님을 위한 연구를 하기. 문제의식과 경험을 실천으로 옮겨 사회에 ‘노동자들’을 위한 안전한 자리를 마련하기. 성장이나 자립의 언어에 지배되지 않고 안전과 연대를 위한 기여를 할 수 있는 연구자가 되고 싶다는 소망이 지극히 사적인 마음에서도 우러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까지 퍽 오랜 시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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