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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비] 우리가 로켓의 속도로 배송할 수 없다면



스스로를 불안정노동 연구자로서 정체화하기 시작하면서 ‘쿠팡’이라는 단어는 기업명일 뿐만 아니라 어떤 사회적 상징으로 자리 잡은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되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열악한 노동 현장, 끊임없이 그곳을 들고나는 일용직 단기 노동자들, 새벽배송에 짓눌리는 쿠팡맨들, 그리고 그 많은 논란을 딛고서도 부동의 코리안 아마존의 위상으로 사회에 말뚝을 박은 거대기업의 견고부동함. 이를 떠받치는 노동자들은 플랫폼 노동자, 일용직, 기간제 등 다양한 방식으로 고용관계에 드나들고 있고, 쿠팡은 그렇다면 고용방식 한정 불안정노동 종합세트에 가깝지 않겠는가 하고 생각하게 된다.


이미 쿠팡‘식’ 노동 및 유통환경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와 르포, 실태고발이 있어 왔고, 2021년 6월, 기적적으로 쿠팡 물류센터에 노조가 설립되었다. 이외에도 쿠팡 물류센터에서 발생한 화재사고와 노동자 사망사고가 잇따르면서 수많은 대규모의 유저들이 사이트 탈퇴러시로 불매의사를 표명한 바 있다. 그에 대한 대응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이후 쿠팡에서는 로켓프레시, 와우멤버십 등을 도입하여 조건부 혜택을 내걸며 다시금 회원을 끌어 모았다. 그러나 이미 안전과 위험이 문제가 된 상황에서 그에 대한 해결책보다는 ‘서비스’를 향상시키고자 한 기업의 선택이 나에게는 퍽 난감하게 다가왔다.


물류센터의 사건사고가 현재진행중인 상황에서 우리는 로켓프레시 가방이 수많은 집 앞에 놓여 있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다루지 않는 상품이 없다 보니(심지어 쿠팡플레이라는 ott도 운영하고 있다) 현장의 ‘누가’ ‘어떻게 됐다’는 비극적인 뉴스보다도 편리함에 관심을 쏟게 되었다. 모르긴 몰라도 어떤 사고가 언제 일어났는지를 이제 제대로 기억조차 하지 못함은 물론이고(놀랍게도 검색을 통해 네이버 지식백과에서 쿠팡 물류센터 사고를 모두 확인할 수 있다), 불과 며칠 전에도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비극, 쿠팡 물류센터에서 사망사고가 있었다는 사실 역시 큰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슬프지 않을 수 없다. 불매를 결심한 나조차도 로켓배송이니 특가, 손쉬운 대리직구에 머뭇머뭇 손길이 향하고, 여전히 그를 대체할 만한 무언가를 찾지도 못했으며, 설령 찾는다 하더라도 그들이 쿠팡과 그렇게 다른 기업일까 하는 의구심은 쿠팡을 계속해서 이용하게 되는 좋은 핑계거리로 쓰인다. 마켓컬리를 비롯한 여러 유통 플랫폼 중에서 노동자에게 산재보험을 적용시켜주는 기업은 아이러니하게도 쿠팡뿐이지 않느냐는 이야기를 듣자하면 씁쓸하다.


이러한 실태에도 불구하고 처음 쿠팡에 지원하면 받는 교육의 내용은 (부정적으로) 놀라운 상황이다. 신입 교육은 안전보다 보안교육이 먼저 이루어진다. 센터를 들어가고 나가면서 상품이 (근로자에 의해) 소실될 가능성을 철저하게 차단하기 위함이다. 입출구에 보안검색대가 있고, 불투명한 가방은 반입될 수 없으며 상품 손실을 막기 위해 물 이외에 어떤 음료나 간식거리도 금지된다. 여기서 정보 유출까지 막고자 물류센터 내부에는 각종 스마트기기도 가지고 들어갈 수 없는데, 작업장-사물함-식당이 모두 다른 층에 있어서 꽤 많은 시간을 내지 않으면 장소를 이동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요령 있게 쉬는 시간을 가지라고 하지만, 딱히 정해져 있지 않고 물량이 많기 때문에 휴식도 없는 셈이다.


이 와중에 주목할 만한 측면이 있다. 쿠팡 물류센터는 젊은이들(이라고 해도 적절할지 모르겠지만) 사이에서 오래 전의 막노동 작업장과 비슷한 인식적 위치를 점하고 있거나 거의 대체한 것으로 보인다. 급전이 필요하거나 내가 ‘사회에서’ 할 일이 없을 때 ‘쿠팡이나 가지 뭐’ 하는 식의 체념이 섞인 듯한 이야기는, 우스갯소리로 주워섬기는 것이기도 하지만 어떤 징후적인 발언으로서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일 테다. 악명 높은 노동 환경과 강도, 아무런 이력도 남기지 않는 휘발성의 순간노동이고, 특별한 숙련이 요구되지 않아 ‘너 아니어도 할 사람 많다’는, 현장과 사회에서의 습관적인 무시가 동반되지만, 주변부-저숙련-저임금으로 영역화되어 있는 ‘물류센터’ 노동은 사실 노동시장에서 취약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장벽 없고 확실한’ 소득의 경로가 된다. 소득이 비정기적이고 일정치 않은 노동자들, 경력이 단절된 여성노동자들, 연령상으로 ‘갈 곳’이 마땅치 않은 중노년의 노동자들을 적극적으로 맞이하는 낮은 장벽은 노동시장의 모든 취약계층을 그곳에 집중시킨다.


‘당일지급’이라는 키워드는 사실 불안정노동자에게는 물론이고 ‘성인’의 초입에 들어선 청년들에게도 너무 매력적이다. 또 근무일을 자유롭게 설정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는 점도 긍정적인 요인으로 기능한다. 쿠팡 물류센터 지원은 연령, 성별, 지역을 기입하면 완료된다. 일용직, 단기의 경우 근무 바로 전날 오전부터 지원이 가능하다. 구인구직 사이트에 가면 쿠팡의 광고가 몇 페이지를 전면 장악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 코로나19로 유통 및 배송산업이 활황을 맞으면서 더욱 심화됐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러한 장점 때문인지 인력이 모여 들면서 선착순에 들거나 조건이 더 세세하게 맞아떨어져야 근무를 할 수 있다. 일정을 자주 취소하면 다음 채용 시 순위에서 밀려난다. 지원자가 많을 시 마감됐으니 다음에 지원해달라는 연락을 받는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쿠팡을 중심으로 엄청난 규모의 상품/노동력 수요공급 체계가 형성되어 있다. 이미 쿠팡은 사용자 입장에서도, 노동자 입장에서도 쉽게 포기하거나 외면할 수 있는 플랫폼 기업이 아니다. 사실 이건 쿠팡의 문제만이 아닐지도 모른다. 모종의 이유로 쿠팡이 순식간에 사라진다고 해도, 이 ‘체계’가 허브나 노드만 바뀌어 그대로 유지될 것이라고 예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쓱배송, 마켓컬리, gs 프레시...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당일배송이라는 하나의 현상은, 어떻게 해도 제대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심대한 수준에서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그들은 초고속 배송을 사용하는 소비자도 되고, 급전을 필요로 하는 자발적인 주변부 노동시장의 공급자가 되기도 한다.


이 모든 현상은 당연히 나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노동시장-상품시장에서의 수요와 공급이 복잡하게 뒤얽혀 있고 중첩되어 있으며, 이것이 하나의 거대한 ‘시스템’으로 자리 잡은 결과. 최근 신문연 이론 세미나에서는 낸시 프레이저의 <좌파의 길>을 읽고 있다. 이 책은 현 지구촌의 전면적인 위기를 ‘자본주의 사회’라는 거국적인 프레임 안에서 해석하고자 시도하는데, 어쩌면 맥락은 다를지 모르지만 나는 ‘쿠팡’으로 상징되는 이러한 ‘시장들’ 간의 교차 역시도 같은 방식으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노동만으로도, 소비주의만으로도, 어떤 대기업의 횡포만으로도 설명될 수 없으며, 이는 종합적이고 거시적인 관점을 필요로 할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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