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대학원 동기들이 우르르 졸업했다. 나는 이제야 석사학위 졸업논문을 쓰고 있다. 2년에다 추가학기까지 2번 더했다. 급한 마음에 무턱대고 쓴다고 졸업이 되는 건 아니겠고, 다만 근 3년을 엉성한 주제와 문제의식으로 방황하고 헤매다가 마침내 ‘뭔가라도 쓸 수 있게’ 되었으니 그것만으로도 감회가 남다른 것은 사실이다. 대학원 면접에서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을 논문 한 편을 써 보이고 말겠다는 포부를 밝혔던 일을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난다. 학사는 파리를 연구하고 석사는 파리의 뒷다리를 연구하고 박사는 파리 뒷다리의 발톱을 연구한다고 하는 게 우스갯소리인줄로만 알았더니, 석사과정 코스워크 2년을 꽉 채우고 나서야 그 현실을 몸소 깨달은 것을 보건대 나는 참 배움이 더딘가 싶기도 하다. 논문을 쓰려고 책상 앞에 앉으면 이런 잡념들만 한꺼번에 들이친다.
그래서 논문 주제가 뭐야? 라는 질문에 어...현대에 접어들면서 현대인은 산업화의 영향으로 시간을 분절적으로 인식하게 됐고 그 과정에서 권태를...하고 말도 안 되는 논리를 더듬더듬 주워섬기며 인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던 나는 이제 한국의 저임금 불안정노동 청년, 그중에서도 만 19~34세 청년들이 당면한 문제들을 살피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내가 보기에도 연구참여자의 범위가 상당히 광범한 편이라서 소위 말하는 글의 각을 살리려면 더 많은 인터뷰를 하고 데이터를 모아야 한다. 석사과정을 지내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영어 논문을 읽는 것도, 수업 발제를 하는 것도, 오랜 시간 논문을 읽고 공부를 하는 것도 아니라, 이런 식으로 연구의 ‘범위’를 정하는 일이었다.
그런고로 석사과정은 내리 나의 한계를 인정하는 시간이었다고 할 수 있다. 기라성 같은 학자들의 글을 보면서 ‘언젠가는 인간과 이 사회를 멋지게 정의해보자’ 했던 결심은 그 한계 앞에서 보란 듯이 좌절했다. 내가 ‘무슨 사회’니 ‘무슨 인간’이니, 턱없이 부족한 식견과 배움을 가지고 그런 일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일종의 오만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그걸 깨닫고도 한참 동안 조감도 같은 시각을 버리지 못했고, 내가 직전 칼럼에서도 쓴 바 있듯이, 그렇다면 ‘부분’을 말함으로써 더 큰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라는 식의 합리화를 거쳐야 했다.
그러나 막상 논문 작업에 돌입하자 (저 칼럼을 쓴 것이 불과 약 3개월 전임에도 불구하고) 내 생각은 다시 한 번 크게 흔들렸다. 인터뷰 횟수가 늘어날수록, 풀어낸 녹취록을 읽고 또 읽을수록, 연구자에게 관찰과 연구란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하는 질문이 계속 떠올랐던 것이다. 이 사람들이 ‘부분’일까? 이 사람들의 목소리가 굳이 ‘큰 이야기’를 위해 녹여져야만 하는 것일까? 그래서 나는 또 다시 무언가를 위에서 내려다보려는 오만에 빠지지 않기 위해 단어부터 주의하기로 했다. 내가 만난, 만나야 할, 만나고 싶은 청년들은 연구대상이 아니라 ‘연구참여자’다. 기회가 있다면 그들 역시 말할 준비가 되어 있었고, 그런 의지가 있었기에 선뜻 내 연구에 ‘참여해 주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도움을 통해서 면면이 특별하고 각기 다른 그들로부터 단 몇 가지의 특징만을 쏙 뽑아내는 일이, 더 나아가서 그것이 모두에게도 마찬가지라고 선언하는 일이 불가능함을 비로소 알게 됐다.
‘끌어올리기?’ ‘중심에서 시선을 돌리기?’ 좋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방점은 연구자가 아니라 연구참여자에 찍혔으면 한다. 연구자라는 위치는 대단한 특권을 가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주도권을 내어주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니까 말하고자 하는 것은 ‘연구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하면 ~할 것이다’라는 통찰을 얻기까지, 문제의식을 갖기까지 연구자의 통찰력은 무시할 수 없는 무게를 가질 테지만, 섣불리 그 일종의 가설을 사람들 위로 덮어버리지 말아야 한다. 내가 말하는 ‘큰 이야기’의 함정은 여기에서 나온다. 그들이 맞닥뜨린 문제가 다시 그런 거대한 특징으로 녹아버리는 순간 섬세한 차이는 사라지고 ‘최대 다수’를 위한 해결책이 등장하며, 사각지대는 끊임없이 생산될 것이다. 문제는 그 사각지대가 결코 작지 않고 적지 않다는 데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그들의 목소리는 목소리대로 최대한 다양하게 들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기 위해 여직 고심하고 있는 중이다.
물론 이것을 모든 연구의 답이라고 내놓은 것은 당연히 아니다. 소위 기라성 같은 학자들의 연구는 그대로 의미가 있고 또 연구자 수만큼 많은 목소리가(...) 있다는 것 역시 알고 있다. 다만 나는 석사과정을 겪으면서 내 나름의 연구 감수성을 발달시킬 수 있었고, 그 과정이 훈련의 연속이었음을 깨달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과정생’에는 그런 의미가 있었던 것이다. 그저 문제의식만 투철했고 스스로를 ‘완성형’ 공부쟁이라 자부했던 무지렁이는 이렇게 (진짜 아는 것이 없어) 겸손하게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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