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 노동정책이 말하지 않는 것들



최근 발간된 『노동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전혜원, 2021)은 노동과 관련한 문제들을 폭넓게 다루지만, 그 중에서도 그동안 ‘제대로’ 드러나 본 적 없던 문제들을 ‘말한다.’ 여기서 굳이 ‘말한다’는 부분에 강조를 둔 이유는, 이 책이 변화되고 복잡해진 현재의 노동시장을 담지 못한 채 보수적으로 적용되는 기존의 노동정책이나 복지제도가 수많은 노동자들을 절벽으로 몰고 있는 현실을, 학술적인 분석이나 수사적인 문제제기가 아니라 생생한 사례들을 통해 ‘전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쿠팡 로켓배송의 그림자, 택배 노동자들의 불합리한 노동조건 등과 같이 직관적으로 노동과 연결되는 논쟁거리가 있는가 하면, 공정성처럼 형이상학적으로 여겨지는 소재가 어떻게 임금노동자들의 현실적인 이해관계와 다층적으로 얽혀 있을 수 있는지에 대해 연공급제를 실마리로 삼아 설명하기도 한다.


더 이상 노동이 ‘소명의식’ 내지는 어떤 도덕적 가치와 필연적으로 결부되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고들 말한다. 자아실현의 수단이라든지 노동윤리 같은 그럴싸한 여구는 그 효용을 다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이 한 사람의 삶에서 차지하는 중요성까지 한꺼번에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여전히 우리는 시쳇말로 밥벌이에 불과한 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기실 노동이라는 행위에는 생계유지의 목적 외에도, 그에 상응하는 만큼의 중요성을 지닌 기능이 있다. 한나 아렌트의 경우 ‘인간의 조건’을 설명하는 도정에서 노동labor과 일work을 구분하기도 했지만, 굳이 이를 구분하지 않아도 정당한 ‘사회의 구성원’, ‘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노동이라는 활동을 거쳐야만 한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를 통해 단순 인구수로부터 ‘경제활동(가능)인구’라는 거대한 기술적 통계에 포착되고, 생계를 넘어서 한 나라의 사회경제적 발전과 안정을 도모함에 참여하는 것으로 인정받는다. 즉 여기에는 한 인간이 기여하고 돌려받음으로써 ‘사회적 존재’로 끌어올려지는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를 돌아보면서 나에게 드는 몇 가지 의문이 있다. 이 노동이라는 개념이, 현재 한국 사회에서 흔히 이야기되는 것처럼, 어떤 경쟁의 관점에서 접근될 수 있는 문제인지 혹은 접근되어야 하는 문제인지 등의 것이다. 경쟁은 승리와 패배의 구분을 전제로 한다. 굳이 먹고 삶에 있어서 누구는 이기고 누구는 지는, 그런 논리가 필요한 것일까? 또 이런 노동과 경쟁의 기묘한 접착성을 분석하기 위해서 쏟아져 나오는 신자유주의, 통치성, 생존주의 등의 수많은 개념들과 담론들은, 그렇다면 이 ‘노동’과 ‘사회적 존재’가 봉착한 모순을 어떻게 풀어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가? 또한 필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사회적 존재’가 된다는 것은 규범적 인정과 승인을 수반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누군가는 ‘살기survive 위해’ 위험이나 불안정을 감수하고 목숨을 담보로 내걸어야 하는 걸까?


이러한 시점에서 마주한 것은 ‘노동 없는 대선’이다. 심상정 후보의 주4일제나 신노동법 공약 정도를 제외하면 노동 ‘관련’ 공약은 주로 일자리 창출이나 ‘기업을 위한 것이 노동을 위한 것이다’라는 식으로 친기업적인 방향을 좇고 있다. 이 논지들을 조금 더 깊게 살펴보면 특히 앞서 이야기한 모순적 문제와 고민이 비롯하는 주변부 노동에 대한 고려가 거의 없다. 게다가 이와 같은 지향성은 정책이나 복지의 포용성을 넓히는 것이 아니라 일부 예비노동자들을 기존의 노동정책이 다루던 범위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마저도 충분히 성공적일지 조차 알 수 없으며, 전례들을 돌아보건대 어찌저찌 집행이 된다고 해도 별다른 성과 없이 흐지부지되기가 다반사이기도 했다.


식견이 짧은 과정생이 내린 섣부른 결론임에 틀림없겠지만, 이는 결국 당면한 문제를 기존의 협소한 틀에서 보수적으로 해결하려고 했기 때문에 발생한 실패라고 본다. 특히 기술 발전이라든지 4차 산업혁명, 기계화 등에 의한 위기담론은 이미 낡은 경고가 되었다. 기술은 오래전부터 변화해 왔고, 그때마다 대응과 대처가 적실하게 이루어지지 않았을 뿐이라는 것이다. 노동과 고용은 점점 다변화되고 끊임없이 분기하고 있으므로, 어떤 이상적이고 규범적인 ‘사회적 존재’로서의 모범답안은 그림자를 더욱 크고 짙게 만든다.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해 왔던 노동자들, 새로이 가라앉은(을) 자들, 주변으로 밀려나 ‘노동자로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자들...배제는 퇴적된다.


이것은 우리가 구분선 혹은 경계선을 포기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전혜원이 이야기했듯 연공급제는 내부노동시장을 기준으로 그어진 선에 의해 유지되면서 끊임없이 주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는 대표적인 사례의 하나일 뿐, ‘이상적 사회인’을 중심으로 형성된 전반적인 노동정책이나 담론 자체가 계속해서 경쟁논리를 담지한 구조적 틀을 가져감으로써 배제에 낙인을 더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겠다. 요즘 들리는 것과 같이 노동하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는 사회이기도 해야 하지만, 어쩌면 지금 시급하게, 또 추가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노동하고 먹고 사는 사회여야 한다는 전환적 사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참고문헌


전혜원. 2021. 노동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 사해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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