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년이 죄를 지으면 소년원에 가고, 대학생이 죄를 지으면 대학원에 간다.”
소셜 미디어를 떠도는 많고 많은 대학원생 밈(meme) 중에 가장 최근작이다. 그러게, 우리는 무슨 죄를 지어서 여기에 오게 된 것일까? (애니메이션 심슨의) 마지는 “잘못된 선택을 했을 뿐”이라던데. 우리는 정말 잘못된 선택을 했고 그게 죄가 되는 것일까?
밈은 씁쓸하게나마 웃음이라도 주지, 주변에서 듣는 걱정과 충고는 정말로 상처가 될 때가 많다. 최근에 만나게 된 초면의 선배들은 “늦지 않았으니 지금이라도 잘 팔리는 전공으로 바꿔야 한다며” 농담인지 조언인지 모를 말을 굳이 굳이 내게 들려주었다. 사회운동을 어떻게 막을지, 노조를 어떻게 파괴할지 연구해야 잘 팔릴 테니 노동을 공부하고 운동을 공부해도 그런 쪽으로 연구를 하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정말이지 표정 관리를 하기 힘들었다.
농담의 의미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분들의 경험과 상처를 다 헤아릴 수 없기 때문에 쉽게 비난할 수도 없다. 나에게 회의가 없냐고 묻는다면 나도 사실 할 말은 없다. 매일 불안과 싸우고 있으니까. 게다가 불안하다고, 힘이 든다고 소리치는 일은 그 자체만으로 의미 있는 행동이기도 하다.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에서 저자를 무너뜨렸던 것은 “자네는 그래도 살만했지?”라는 태평한 질문이었다고 했다. ‘네가 선택한 길이잖아’,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하는 순응보다는 분노가 세상을 바꾸는 데 더 유용하다. 단지 이 분노를 자조나 회의로 돌리는 게
아니라 에너지로 바꿔내고 싶을 뿐이다.
그렇다면 무책임하게 긍정하지도, 답 없이 부정하지도 않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여러가지를 상상해 볼 수 있겠지만 나의 경우에 대학원생으로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건 역시 ‘불안함’이었다. 과정 중에 주변에서 석사과정을 마치면 뭐할거냐고 물을 때마다 “일단 잘 마치는 게 목표야”라는 말로 둘러댔다. 거짓말은 아니지만 사실은 정말 졸업하고 나서 어떻게 살게 될지 알 수 없었다. 학교 밖에서 사회운동을 주제로 연구할 수 있는 연구원이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졸업이 눈앞에 보이기 시작할 때 과연 졸업이나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졸업 그 자체도 두려웠다. 끝에 무엇이 있을지 모르는 불안함이 싫어서 더이상 공부하지 않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